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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명시 (502)
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허만하의 「깊이의 순수」 감상 / 이규열 깊이의 순수 허만하 돌 안에 고여 있는 시간이 광물질에 동화하여 침묵하고 있을 때, 고뇌 안에 쌓여 있는 슬픔은 비티아즈 해연 깊이가 된다. 빛이 뚫지 못하는 투명한 물의 두께가 만드는 어둠의 깊이에서, 생명은 스스로 형광을 만들며, 암흑에 저항한다. 에베레스트 산정에서 공기의 희박을 느끼고 쓰러진 인간이 높이를 깨닫듯, 조여드는 어둠의 농도로 최후의 숨 가쁨을 느끼는 물의 깊이. 밤하늘 시름 하나, 별똥별 무게로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는 깊이. 슬픔과 고뇌를 초월한 명석한 깊이의 순수. -시집 『언어 이전의 별빛』에서 ....................................................................................
봄날에 연애 양선희 봄을 타시나 봐요 당신도 타고 싶어요 사나운 꿈을 연명장치처럼 붙들고 산 날 흔들린다 그가 내 집을 물어뜯는다 구멍을 만든다 새순을 꿈꾸는 나 끄집어낸다 그가 나의 골 깊은 겨울을 벗기고, 씻긴다 내 몸 샅샅이 색들이 살아난다 봄 탄다 ⸺시집 『봄날에 연애』 2021년 7월 ------------------- 양선희 / 1960년 경남 함양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87년 계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당선. 시집 『일기를 구기다』 『그 인연에 울다』 『봄날에 연애』 . 장편소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 외 에세이집 3권.
국그릇 행성 이영옥 물미역을 데쳤다 푸른 물결이 밀려와 고요를 헤집는다 지상의 말들이 얼마나 쓸모없는지 먼지처럼 깊어진 엄마 허기 아닌 사랑은 없고 오와 열을 맞춘 수저는 냉정하다 쓸 만한 것을 버린다고 잔소리 하던 엄마에게 궁상맞다고 핀잔이나 주던 나쁜 년은 쥐를 보아도 관심 없는 고양이처럼 굴었다 제멋대로 구는 모럴은 지겨웠고 당연한 것들이 나를 슬프게 하는 저녁이다 내일 죽어도 내일을 준비하는 손끝 가루를 움켜 쥔 가랑잎이 가래처럼 끓고 윤기 잃은 마른 것마다 눈물의 염분이 허옇게 배어있었다 우리는 제어할 수 없는 탄력으로 심연에서 튕겨 나왔던 어리둥절한 물질 왜 서로의 난간 아래 매달려 찾아 헤매었을까 뭇별 사이 낯설고 창백한 푸른 점 하나가 찍힐 때 미역국이 조용하게 끓고 있었으면 좋겠다 내 옆..
너를 위하여 김남조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 한다. 가만히 눈을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 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김남조/1927년~ 경북대구 출생. 모윤숙(毛允淑) 노천명(盧天命)의 뒤를 잇는 1960년대 대표 여류시인으로 꼽히는 김남조 시인은 1927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 마산고교, 이화여고 교사와 숙명여대 교수를 지냈다. 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