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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중얼거리는 생각/김지명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11. 27. 09:02



중얼거리는 생각

 

   김지명

 

 

 

처음부터 나는

청유형 물방울로 똑똑 떨어뜨렸다

놀이기구처럼 싱싱

떨어져 다음 다음 다음 월요일에 닿았다

 

어느 날

녹이 슬은 수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물 좀 주세요 생각 몇 방울만 주세요

 

그녀 발밑에는

온몸으로 뿌리친 생각들이

떡잎도 뿌리내리지 못한 생각들이

쇳가루로 흩날리고 있었다

 

봄이 가장 길어질 때

호기심은 공처럼 아무 데나 굴러

내 생각 없이 골목을 데리고 떠났다

 

여름이 가장 길어질 때

베란다 식물처럼 한쪽으로 머리를 두는 굴성으로

내 옆구리가 닳아져버렸다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다는 것을 아는 동안

한쪽으로 기운 굴성을 펴느라

그녀는 봄여름가을겨울 생각을 모두 써버렸다

 

용량 부족이라는 지시어처럼 길게

청유형 생각의 공터에 비가 쏟아졌다

흥건하게

 

물덤벙 끼어든 화요일

 

소녀야 울어도 된단다

누구라도 생각은

모자랄 수 있어 고장 날 수 있어

 


 

                 —《시현실》 2017년 가을호



김지명/ 1960년 서울 출생. 2007년 《시에》신인상, 2013년 《매일신문》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쇼펜하우어 필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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