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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달래다/안정옥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12. 27. 09:05



달래다


 안정옥

 

 

 

누구나 뱃속에서부터 손을 꽉 쥐지요 쥔다는 것이

두려워서, 그래서 누군가 조금씩 달랬어요

공작 같은 옷에 새 가방 메고 집밖으로 내보내졌어요

새 물건들은 낯선 것들을 달래려는 부적이었지요

불균형과 아리송한 감정들이 뒤죽박죽이던 사춘기도

달래기 위함이지요 더 낯선 곳으로 나갈 때마다

새것의 명목들이 늘어났어요

달랜다는 말 절묘하다는 걸 아나요

사랑도 옆에 두려면 오랫동안 달래야만 하지요

못 이룬 것 낙담하진 말아요

아직 달랠 준비가 안 돼서 그래요

그들은 빛과 어둠으로 빚어서 그렇겠지요

그 절묘함은 다 빈치(da Vinci)지요

글자들이 좌우 뒤집어져 있고

거울에 비춰야 읽을 수 있는 것은

도달할 수 없는 사랑을 달래려 함이 아니었을까요

한밤중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나무패로 꽂혀 있던 적

질주하는 트럭에 산화한 적 없었는지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처럼 짧게 끊어진 움직임들이

순간의 숨에 멎어요 들키지 않게 판독하는 것이지요

고드름처럼 매달린 죽음이 아직도 활동 중이라는 걸

알았을까요 수요일이 다시 자리잡듯이

새삼스럽지도 않지요

대장장이에게 쇠와 마음이 불이(不二)이듯

몸과 달래기도 불이이지요



     ㅡ 시집 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2017.12)




안정옥 / 1949년 서울 출생. 1990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 『나는 독을 가졌네』 『나는 걸어다니는 그림자인가』 『아마도』 『헤로인』 『내 이름을 그대가 읽을 날』 『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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