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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차마객잔/장만호

시낭송행복플러스 2018. 1. 22. 10:55



차마객잔

 

장만호

 

 

 

올라도 올라도

허공의 답보 같은 스물여덟 굽이의 벼랑길이다

옛날엔 차와 말을 바꾸러 다녔다는 고도는

홍콩발 무협 영화의 흔한 장면처럼

천 길 낭떠러지의 급류와 답설무흔의 구름들을

연이어 잘랐다

 

이어 붙인다

사람을 베어본 적 있어요?

말 위에서,

추락을 겁내는 나에게

은퇴한 검객처럼 가이드는 묻는다

 

천장사(天葬士)를 구하지 못한 가난한 집안의 부탁으로

그는 사람을 베었다고 한다

베었을 뿐 아니라 여러 번 쪼개고 발랐으며

하늘을 배회하는 식욕들이 조각난 영혼을 건네받는 것을 보며, 그는

그의 생도 한순간 찢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그래도 이만하면

가이드 한번 잘한 것 아니냐고,

 

어느새

호도협에서 불어난 어둠이

추녀까지 차오른 저녁의 차마객잔에

나를 가만가만 부려놓는다.

 

함박눈처럼 쏟아지는 별빛들이

마당에 뽀드득 쌓이는 그 밤에

나는

사람은 한 번도 밟은 적이 없다는

설산의 산정을 보며,

머리카락만 남기고

나머지 영혼은 모두 먹어치운다는 설산의 독수리들과

조각난 제 영혼을

기워 맞추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는데

 

객잔은 가슴 섶의 오래된 경전을 꺼내어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ㅡ 계간 시인수첩2017년 겨울호



장만호 / 1970년 전북 무주 출생. 고려대학교 국문과 및 같은 대학원 졸업. 2001<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무서운 속도. 저서 한국시와 시인의 선택. 현재 경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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