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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고란초, 참 고단한 풀이름/박정남 본문
고란초, 참 고단한 풀이름
박정남
울기도 했는데
후회도 했는데
도망도 쳤는데
오줌도 쌌는데
적군에게 당하기보다는
우리 놀던 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더 춤추며
우리끼리 술 마시며 놀다가
치마를 덮어쓰고 봄 꽃잎들 떨어지듯
가벼이, 우리 여럿이 서로 손 붙잡고
떨어져 내렸는데
그래서 낙화암이란 붉은 글씨는
만대에 빛나는 정절도 아니고
다만 다급한 선택이었는데
그 죽음들을 받아 빌고 있는
고란사가 백마강 부소산성 기슭에 앉아 있고
언제부터인가 그 낭떠러지 바위에
피어나기 시작한 고란초는
그 몇 안 되는 잎들과 뿌리조차 강바람에 다 내어놓고
반공중에 허허로이 헤매고 있는 울음
사무치고 또 사무치니
고란초
참 고단한 풀이름
여인들의 운명이라
시도 때도 없이 낙화암 고란사 쇠북 소리 운다
삼천궁녀 넋들의 겨우겨우 연명하는 목숨, 고란초가 흔드는
쇠북소리 길게 운다
—《시산맥》2018년 봄호
박정남 / 1951년 경북 구미 출생.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숯검정이 여자』『길은 붉고 따뜻하다』『이팝나무 길을 가다』『명자』『꽃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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