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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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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모른다 하랴/나태주

시낭송행복플러스 2018. 4. 19. 11:02



모른다 하랴

 

  나태주

 

언제나 모시전은 이른 새벽에 선다고 했다

두세두세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아이들 몰래 모시 팔러 한산장에 가시던 아버지

대처에서 모시장수들은 돈 전대를 옆구리에 차고

한 손에 촛불을 들고 한 손으로 모시를 펼치며

모시 값을 흥정한다고 했다

 

그날도 아버지, 어머니 일주일 동안 토굴에 들어가

짠 모시 한 필을 들고 한산장에 가셨지

모시를 좋은 값에 넘겼지만 국말이집에 들어가

거푸 마신 막걸리에 취하고 흥이 나서

모처럼 만난 친구 소국주집으로 끌고 들어가

한 잔만 한다는 것이 그만

저녁때까지 술자리가 이어져

모시 한 필 값을 다 날려버렸지

요모조모 가용으로 쓰고 아이들

학비로도 써야 할 돈인데

소곡주가 모두 가져가 버렸지

 

아침에 잠에서 깬 아버지, 빈 주머니를 보여주었지만

어머니 한숨만 쉬고 별말씀이 없었지

, 내 어찌 그러한 젊으신 아버지 어머니를 잊을 수 있으랴

한산모시, 한산장, 소곡주를 모른다 하랴.

 

 

         ⸻시집 그 길에 네가 먼저 있었다(2018. 2)에서



나태주 / 1945년 충남 서천 출생.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당선. 1973년 첫 시집 대숲 아래서이후, 그 길에 네가 먼저 있었다까지 39권 출간. 기타 산문집, 동화집, 시선집 여러 권 출간. 1964년부터 2007년까지 43년간 초등교단에 재직, 정년퇴임. 공주문화원장 8년 역임. 현재는 공주풀꽃 문학관 주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