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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첫 장/권여원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봄의 첫 장/권여원

시낭송행복플러스 2018. 5. 29. 07:27



봄의 첫 장

 

   권여원

 

 

 

매화나무 아래 서면

허공에 불이 켜진다

겨우내 하늘을 마시며 자란 꽃잎들

가볍고 여린 실핏줄로 터지고 있다

살점을 떼어내듯 분홍빛 지문들이 떨어지는

언덕 위의 붉은 잔

나무는 피를 흘려도 아프다 소리치지 않는다

산자의 어깨에 내리는 저 핏방울

창공에 붉은 물결 넘치는 동안

바람은 꽃망울을 넘어가기 위해 가벼워진다

차디찬 땅끝,

언약을 바라본 이들에게 온기가 돈다

꽃잎의 살점은 우리의 허물을 갚아주신

은총의 무게

내 몸 어딘가 당신을 향한

연분홍 촉수가 켜진다




     ⸺시집 구름의 첫 페이지(2018. 5)에서


권여원 / 서울 출생. 2011시와 세계로 등단. 소설집 그레이신드롬, 시집 구름의 첫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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