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2018년 6월 16일은 김수영 시인(1921~1968)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모더니스트 시인이며 독재에 항거한 저항시인이자, 자유를 꿈꾸기도 했던 김수영 시인의 50주기를 맞아 시인을 기억하는 행사가 곳곳에서 진행됐다.
시인의 기일인 6월 16일 숙명여대 진리관 212호에는 시인과 평론가들이 모여 김수영의 시를 낭송하는 시 낭송회 “너도 나도 도는 힘을 위하여”가 개최됐다. 이번 시 낭송회는 임동확 시인의 제안으로 김수영 시인을 좋아하는 시인과 평론가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으로, 새롭게 펴낸 김수영 전집의 편집을 맡은 이영준 평론가, “살아있는 김수영”, “김수영 근대를 향한 모험” 등 연구서적을 다수 남긴 김명인 평론가, 김수영 시의 연구자인 박수연 평론가 등 김수영 시인 연구자들이 참석해 더욱 의미 깊은 자리를 만들었다.
시 낭송회는 김응교 시인이 사회를 맡았으며, 김수영 시인의 시를 55년부터 67년에 이르기까지 창작연도 순으로 낭송하며 시인의 시 세계를 살펴보았다. 낭송회는 김경애 시인이 김수영 시인의 시 “거리.2”를 낭독하며 시작됐으며, 김명인 평론가, 이서윤 시인, 김응교 시인, 권현형 시인, 윤성광 사진작가, 박수연 평론가, 노혜경 시인, 이영준 평론가, 이성혁 평론가, 임동확 시인 등이 순서대로 시를 낭송했다. 또한 시 낭송에만 그치지 않고 김수영 시인의 작품세계 변천사를 살펴보기도 했다.
‘바뀌어진 지평선’(56년 3월 발표)을 낭송한 김명인 평론가는 이 시가 “김수영 시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시”라고 설명했다. 55년 무렵은 전쟁포로 생활을 끝내고 귀향한 김수영이 가정을 꾸리고 직장도 갖는 등 안정적인 생활을 가지게 되는 시기이며, 그 전까지 엄숙, 진지, 고결 등을 추구했던 김수영은 경박한 삶과 자신이 이전에 추구했던 목표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고민했다는 것이다.
“모두 다같이 나가는 지평선의 대열/뮤우즈는 조금쯤 걸음을 멈추고/서정시인들은 조금만 더 속보로 가라/그러면 대열은 일자가 된다//사과와 수첩과 담배와 같이/인간들이 걸어간다/뮤우즈여/앞장을 서지 마라/그리고 너의 노래의 음계를 조금만/낮추어라” - 김수영, ‘바뀌어진 지평선’ 일부
김명인 평론가는 “김수영 시인이 설정한 시인과 삶의 관계는 뮤즈와 생활이 하나의 대열을 가지고 같은 지평선에 모이게 되는 것”이라며 이러한 생각이 “김수영 시의 동력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수영은 초인적인 것, 영원한 것을 추구했지만 동시에 자기 생활, 살아가는 이 땅, 더럽고 추하고 고통스럽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삶에서 시를 길어내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며 “김수영 시의 변곡점이 되는 시”라고 전했다.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강바람은 소리도 고웁다/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달리아가 움직이지 않게/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무성하는 채소밭가에서” - 김수영, ‘채소밭 가에서’ 일부
김응교 시인은 하모니카 연주와 함께 시 ‘채소밭 가에서’(57년 발표)를 소개했다. 김응교 시인은 “사람들은 김수영 시인을 모더니스트라 생각하며 도시에 관한 시만 쓰는 줄 알지만, 자연에 대한 시가 굉장히 많다.”며 “물, 풀, 등 자연에서 시상을 많이 얻은 시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응교 시인의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에 맞춰 ‘채소밭 가에서’의 구절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를 활용, 참가자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신앙(信仰)이 동(動)하지 않는 건지 동(動)하지 않는 게/신앙(信仰)인지 모르겠다//나비야 우리 방으로 가자/어제의 시(詩)를 다시 쓰러 가자”- 김수영, ‘詩’ 전문
박수연 평론가는 1964년 김수영 시인이 발표한 짧은 시 ‘詩’를 낭송하고 “김수영 시인이 사회변화를 바라며 고양됐던 시기가 1964년 시기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1964년은 한일회담 반대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한 시기로, 4.19 혁명을 거치고 좌절한 김수영 시인은 ‘그 방을 생각하며’에서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고 표현하는 등 혁명에 좌절한 이의 마음을 그린 시를 많이 창작했다. 박수연 평론가는 “방을 노래한 시들이 많이 있는데, 그 시의 ‘방’은 혁명이 실패해 자기 자신만의 처소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방이었다. 그 와중에 64년을 맞이했고, 그때 쓰여진 시가 바로 이 ‘시’인데, ‘우리 방으로 가자/어제의 시를 다시 쓰러 가자’라는 구절의 ‘어제의 시’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비슷한 시기 쓰여진 김수영의 산문 ‘대중의 시와 국민가요’를 소개하며, “산문 속에서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개작한 ‘탄아 탄아 최류탄아’라는 민요시를 인용하고 ‘하극상의 정신이다.’고 이야기한다.”며 “김수영 시인이 하극상의 정신을 이야기한 시대가 바로 1964년”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낭송회는 약 2시간가량 진행됐으며, 김수영 시인의 시 ‘꽃잎.2’를 낭송한 김경춘 씨는 노란 장미를 가져와 참가자들과 나누기도 했다. 김수영 시인의 사후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김수영 시인을 잊지 않고 기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자리였다.
한편 김수영 시인에 대한 다양한 추모 행사가 이어지고 있으며, 도봉구에 위치한 김수영문학관은 6월 23일에는 이성복 시인, 6월 30일에는 여태천 시인, 7월 7일 함민복 시인, 7월 14일 서효인 시인 등 네 명의 시인이 김수영 시인의 문학세계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