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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낭송 추천시

석문(石門)/조지훈

시낭송행복플러스 2018. 8. 24. 09:57



석문(石門)

   

 

                                            조지훈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石壁欄干)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 년(千年)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희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남긴 푸른 도포 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 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 감을 어찌합니까? 

 

  몇 만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 허공 중천(虛空中天)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 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이지 못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 년(千年)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 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시집 『풀잎 斷章』(창조사, 195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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