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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사려니 숲길/도종환 본문
도종환의 「사려니 숲길」 감상 / 이원
사려니 숲길
도종환
어제도 사막모래 언덕을 넘었구나 싶은 날
내 말을 가만히 웃으며 들어주는 이와
오래 걷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보다 다섯 배 열 배나 큰 나무들이
몇 시간씩 우리를 가려주는 길
종처럼 생긴 때죽나무 꽃들이
오 리 십 리 줄지어 서서
조그맣고 짙은 향기의 종소리를 울리는 길
이제 그만 초록으로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는
산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것들을 주체하기 어려운 날
마음도 건천이 된 지 오래인 날
쏟아진 빗줄기가 순식간에 천미천 같은 개울을 이루고
우리도 환호작약하며 물줄기를 따라가는 길
나도 그대도 단풍드는 날이 오리라는 걸
받아들이게 하는 가을 서어나무 길
길을 끊어 놓은 폭설이
오늘 하루의 속도를 늦추게 해 준 걸
고맙게 받아들인 삼나무 숲길
문득 짐을 싸서 그곳으로 가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라산 중산간
신역(神域)으로 뻗어 있는 사려니 숲길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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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으면 걸을 수 없어요. 다른 풍경으로 갈 수 없어요. 멈춤을 안정이라고 착각하고는 해요. 움직일 때 나타나는 것이 시간인데요. 시간을 위해 계속 만들어지는 것이 길일 텐데요.
걷지 않으면 길은 없어요. 걸을 때 길이라고 부르지요. 숲은 나무들의 우주죠. 사람이 숲으로 들어갔을 때, 사람의 다섯배 열배 큰 나무들은 제 품을 기꺼이 내주었죠. 그곳을 숲길이라고 부르죠. 나무들은 어미처럼 품어주나봐요. 마음이 건천이 되었을 때도 용암으로 끓어오를 때도 가고 싶은 길이니까요.
‘사려니’는 ‘신의 영역’이라는 뜻이라지요. 신성이 깃든 깊은 곳이라는 뜻이겠지요. 연약하고 힘없는 것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조그맣고 짙은 향기의 종소리를 내게 도와주는 것, 신성은 그런 것이겠지요. 그러니 초록으로 개울로 회복시키고, 단풍과 폭설의 시간을 받아들이게 하겠지요. 우리가 ‘스스로 그러하다’는 시간이 내장된, 자연임을 다시 깨닫게 하겠지요.
사려니 숲길의 색과 향기, 소리와 서늘함까지 담아냈다면, 깊은 안을 알고 있는 것이지요. 거기까지 닿은 눈이겠지요. 길과 그 길을 걸은 사람이 닮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요. 초록으로 돌아오라고 부르는 길이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희망을 가져야 하지요.
이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