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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씨앗을 받아들고/이기철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씨앗을 받아들고/이기철

시낭송행복플러스 2021. 1. 7. 09:46

씨앗을 받아들고

 

이기철

 

 

 

씨앗에서 열매까지의 길을

어린 나무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이제 곧 겨울이 와 세상이 조그마해지면

나는 전기밥솥에 쌀을 안쳐놓고

그 위에 녹두콩 완두콩도 두어 개 띄워놓고

솥이 제 몫의 일을 하는 동안

좋은 세상이 어디쯤까지 와 머무는지 알아보러

동구 밖으로 나가보리라

샐비어 잎에 새똥이 마르고

도랑물소리가 발목에 감기리라

밤에는 흰 노트를 펼쳐놓고

내 지은 죄의 목록을 흑연으로 기록하리라

분노 한 사발, 증오 한 그릇, 사랑 한 대접, 노래 한 다발

그리고 부질없이 펴놓은 세상일들을

출석부의 이름 부르듯 불러들이리라

한랭 겨울, 흰 눈이 하는 일을

내 손이 맡으리라

손가락이 곱으리라, 마음이

헝겊처럼 펄럭이리라

 

 

계간 시와 시학202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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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 1943년 경남 거창 출생. 1972현대문학등단. 시집 청산행』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유리의 나날』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산산수수화화초초등 다수. 현재 여향예원, 시 가꾸는 마을운영. 영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