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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한양도성 순성길 탐방 백악구간/암송시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 본문

길따라 시따라, 시가 있는 여행

한양도성 순성길 탐방 백악구간/암송시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

시낭송행복플러스 2021. 3. 30. 20:40

♦♦ 한양도성 순성길 탐방 ♦♦

 

1코스 백악구간

*일시: 202141() 9

*구간: 창의문~혜화문 *거리 : 4.7km *소요시간 : 3시간

*경복궁역(3호선) 3번 출구 지선(초록)버스 7212, 1020, 7022번 버스(자하문고개.윤동주시인의언덕) 도보 2창의문

 

서울 한양도성[사적 제10]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태조 5(1396), 백악(북악산) · 낙타(낙산) · 목멱(남산) ·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 도성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흥인지문 · 돈의문 · 숭례문 ·

숙정문이며 4소문은 혜화문 · 소의문 · 광희문 · 창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또한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주변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다.

 

 

백악구간

창의문에서 백악을 넘어 혜화문에 이르는 구간이다. 백악(북악산, 342m)은 옛 서울의 주산으로 내사산 중 가장 높다. 공극산(拱極山), 면악(面岳)이라고도 하였으며 산세가 반쯤 핀 모란꽃에 비유될 만큼 아름답다. 한양도성은 백악을 기점으로 축조되었다. 19681·21 사태 이후 40년 가까이 출입이 제한되다가 2007년부터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창의문-창의문 안내소-백악 돌고래 쉼터-백악 쉼터-백악마루-1·21 사태 소나무-청운대-암문-백악 곡성-백악 촛대바위-숙정문-말바위 안내소-우수조망명소-와룡공원-암문-서울과학고등학교-경신고등학교-혜성교회-두산빌라-혜화동 전시안내센터(옛 서울시장공관)-혜화문

 

창의문(彰義門)
<보물 제1881> 창의문은 인왕산과 백악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문이다. 사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 문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문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영조 17(1741) 다시 세운 것이다. 영조 때 문루를 새로 지으면서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이 문으로 도성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을 걸어놓았다. 이 현판은 지금도 그대로 걸려있다. 현재는 자하문으로 더 많이 불리는데, 이 문 부근의 경치가 개경(開京)의 승경지(勝景地)였던 자하동과 비슷하여 붙은 별칭이다.

 

창의문~백악마루
창의문에서 백악마루로 이어지는 구간은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성곽을 쌓았는데 한양도성 전체 구간 중 으뜸가는 절경이라 할 만하다. 이 구간의 순성길은 안전을 위해 모두 계단으로 조성해 놓았는데, 운동량은 많지만 등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돌고래 쉼터·백악 쉼터에서는 숨을 고르며 수려한 풍경을 감상해도 좋다.

 

백악마루
도성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白岳山 海拔 342m’라고 적힌 표석이 서 있다. 이곳에 서면 경복궁과 세종로는 물론 한강 건너 63빌딩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처음 성을 쌓을 때 공사 구간을 97개로 나눴는데 각 구간의 이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붙였으니 시작 구간은 천(), 끝나는 구간은 조()였다. 이곳이 바로 천() 구간에 해당한다

 

1·21 사태 소나무
백악마루에서 청운대로 내려가는 길에 1·21 사태 소나무가 있다. 수령이 200년 정도 된 나무인데 15발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 이 총탄 자국은 1968121, 청와대를 습격하려 침투한 북한 특수부대원들과 우리 군경이 교전한 흔적이다. 이곳에서 성 바깥을 바라보면 북한산과 백악 사이에 자리 잡은 평창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평창동이라는 지명은 선혜청의 부속 창고인 평창(平倉)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하였다

 

암문 밖 순성길
조선시대 도성 안과 밖에는 각각 군사들이 순찰을 도는 순성길이 있었다. 조선후기에는 어영청, 금위영, 훈련도감의 세 군문이 각각 8패씩을 내어 도성 주변을 순찰했다

 

백악 곡성
곡성(曲城)은 주요 지점이나 시설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성벽의 일부분을 둥글게 돌출시킨 것을 말하는데 인왕산과 백악에 하나씩 있다. 이 중 백악 곡성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는데 도성을 둘러싼 서울의 산세가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꼽힌다

 

숙정문(肅靖門)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대문이다. 처음에는 숙청문(肅淸門)이었으나 숙정문(肅靖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존 도성문 중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것은 이 문이 유일하다. 1976년에 문루를 새로 지었다. 숙정문 안내소에서 삼청각으로 갈 수도 있고, 일명 김신조 루트라고 불리는 등산로를 따라 북악스카이웨이의 팔각정과 하늘마루로 갈 수도 있다

 

말바위 안내소와 우수조망명소
말바위는 삼청공원 안에 있는 바위로서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백악의 끝자락에 있는 바위여서 말()바위라 하였다고도 하고, 말을 타고 온 사람들이 산에 오르기 전에 이 바위에 말을 매어 두어 말()바위가 되었다고도 한다. 동쪽 능선을 따라 백악에 오를 때 갑자기 경사가 급해지는 지점이다. 그래서 말을 매어 두는 바위라는 설이 유력하다. 우수조망명소는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에서는 성북구 방향이, 다른 한 곳에서는 종로구 방향이 보인다. 우수조망명소는 숙정문 안내소 · 말바위 안내소 · 삼청공원 · 와룡공원으로 가는 길들이 갈라지는 분기점이기 때문에 안내표지판을 잘 확인해야 한다. 창의문·숙정문·말바위 안내소와 삼청각으로 갈 수도 있고, 일명 김신조 루트라고 불리는 등산로를 따라 북악스카이웨이의 팔각정과 하늘마루로 갈 수도 있다

 

북촌한옥마을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마을을 지칭하던 옛 이름으로 현재의 재동 · 가회동 · 계동 · 삼청동 일대에 해당한다. 예로부터 종친(宗親)과 고관(高官)들이 다수 거주했던 곳이라 집의 규모도 컸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 말기 건축물로는 안국동 윤보선가()가 유일하고, 한상룡가(), 김성수가() 1910~20년대에 지어진 건물들도 일부 있으나 나머지 한옥들은 모두 1930년 이후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들이다

 

북정마을
와룡공원 옆으로 도성 안쪽 길을 따라 걷다보면 성북동으로 빠지는 암문이 나온다. 문 밖에 그림처럼 펼쳐진 마을이 바로 북정마을이다. 북정마을에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살던 심우장'성북동 비둘기'를 지은 김광섭 시인의 집이 있었다. 성벽 밑에 50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1960~70년대 서울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서울 한양도성의 흔적들
경신고등학교 뒷길에서 혜화문까지 이어지는 골목길. 성벽이 심하게 훼손되어 군데군데 흔적만 남은 길이다. 경신고등학교 뒷길 초입에서는 성벽이 학교 담장으로 쓰인다. 경신중 · 고등학교를 지나면 모양으로 꺾인 주택 담장 아래에서 축대로 사용된 성돌들을 볼 수 있다. 이어지는 혜성교회 계단 길 양쪽에도 성벽의 일부가 남아있다. 끊어지고 이어지기를 반복하던 한양도성의 흔적은 100m 정도 자취를 완전히 감추었다가 두산빌라 건물 앞에서 다시 나타난다. 여기에서부터 구 서울시장공관 담장까지 150m 가량 성벽이 이어진다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옛 시장공관)
혜화동 옛 시장공관은 다양한 서울시의 정책이 논의되는 일터이자, 서울시장이 하루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집이였다. 공관은 국내외의 손님이 초대되는 행사장 이였으며 1981년 박영수 시장부터 2013년까지 역대 서울시장이 거주했다. 한양도성의 성벽을 담장으로 사용하고 있어 철거 논란이 있었으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하기로 결정하여 한양도성 순성길의 쉼터이자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전시실에는 순성놀이 기록, 혜화동 주변 모형지도, 지도로 보는 한양도성과 역대 시장의 영상 및 기증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혜화문(惠化門)
한양도성의 북동쪽에 있는 문이다. 창건 당시에는 홍화문이었으나 창경궁의 정문 이름을 홍화문으로 지음에 따라 중종 6(1511) 혜화문으로 개칭하였다. 문루가 없던 것을 영조 때에 지어 올렸다. 문루는 1928년에, 홍예는 1938년에 헐렸는데 1994년 본래 자리보다 북쪽에 새로 지었다                

 

한양도성 북악 구간 이용 시간

3-4 9-1007:00 -18:00 (16:00 입장마감)

5-807:00 -19:00 (17:00 입장마감)

11-209:00 17:00 (15:00 입장마감)                                             

 

**경복궁 역 3번 출구-250m직진 7022 7012 1020 탑승 자하문 고개 윤동주문학관에서 하차한다 오른쪽 계단, 전광판에 한양도성 창의문 가는 길 표시되어 있다 - 창의문 안내소 패찰 착용후 말바위 안내소에서 반납한다. 말바위 안내소 근처에 말바위 전망대 나온다. 말바위 안내소 지나면 삼청공원 와룡공원 갈림길에서 와룡공원 쪽으로 간다. 말바위 전망대는 삼청공원 쪽으로 가는 길에 있다- 갈림길에서 와룡공원 쪽으로 가야 한다. 말바위 전망대 조망 관람 시 삼청공원 방향으로 5분 정도 내려갔다 올라와야 한다. 북악산 정상에서 순성길로(경찰 군인 있는 곳 사진촬영 제한) 간다. 말바위 안내소에서 내려오면 도심 통과한다. 서울과학고등학교 보인다. 한양도성 전 구간 바닥이나 이정표 보며 탐방한다.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1879~1944)/ 충남홍성출생. 독립운동가. 승려시인. 법명 용운, 법호 만해. 1925년 한국근대시사의 불후한 업적인《님의침묵》을 펴내 저항문학에 앞장섰다. 노년에 일제의 삼엄한 감시와 경제적 고난속에 창씨개명반대와 조선인학병출전 반대운동등 꿋꿋한 지조와 절개로 풍난화의 매운절개를 잃지 않았다. 조선총독부와 마주하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집 성북동 심우장에서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2코스 낙산구간 (202146일 오전 9)

구간 : 혜화문~흥인지문 *거리 : 2.1km *소요시간 : 1시간

한성대입구역(4호선) 4번출구 도보3 혜화문

 

혜화문에서 낙산을 지나 흥인지문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낙산(124m)은 서울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으로 내사산 중 가장 낮다. 생긴 모양이 낙타 등처럼 생겨 낙타산, 타락산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낙산 구간은 경사가 완만하여 산책하듯 걷기에 적당하다. 특히 가톨릭대학 뒤편 길을 걷다보면 축조 시기별로 성돌의 모양이 어떻게 다른지를 볼 수 있다.

 

한양도성 순성길 구간 탐방

4/1 백악 구간: 창의문~혜화문(4.7km) 소요시간 약3시간

4/8 낙산 구간: 혜화문~흥인지문 (2.1 Km) 소요시간 약 1시간

4/15 흥인지문구간: 흥인지문~장충체육관 (1.8km) 소요시간 1시간

4/22 남산 목멱산 구간: 장충체육관~ 백범광장( 4.2 km) 소요시간 약 3시간

4/29 숭례문 구간: 백범광장~돈의문 터 (1.8km) 소요시간 약 1시간

5/6 인왕산 구간: 돈의문 터~창의문 (4.0km) 소요시간 2시간 30분             - 자료 한양도성 홈페이지에서 옮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