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가 지는 법 (외 1편)
복효근
능소화는 그 절정에서
제 몸을 던진다
머물렀던 허공을 허공으로 돌려주고
그 너머를 기약하지 않는다
왔다 가는 것에 무슨 주석이냐는 듯
씨앗도 남기지 않는 결벽
알리바이를 아예 두지 않는 결백
떨어진 꽃 몇 개 주워 물항아리에 띄워보지만
그 표정 모독이라는 것 같다
꽃의 데스마스크
폭염의 한낮을 다만 피었다
진다
왔던 길 되짚어가고 싶지 않다는 듯
수직으로 진다
딱 거기까지만이라고 말하는 듯
연명치료 거부하고 지장을 찍듯
그 화인 붉다
예를 들어 무당거미
무당이라니오
당치 않습니다
한 치 앞이 허공인데 뉘 운명을 내다보고 수리하겠습니까
안 보이는 것은 안 보이는 겁니다
보이는 것도 다가 아니고요
보이지 않는 것에 다들 걸려 넘어지는 걸 보면
분명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지요
그 덕분에 먹고 삽니다
뉘 목숨줄을 끊어다가 겨우 내 밥줄을 이어갑니다*
내가 잡아먹은 것들에 대한 조문의 방식으로 식단은 늘 전투식량처럼 간소합니다
용서를 해도 안 해도 상관없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작두라도 탈까요
겨우 줄타기나 합니다
하루살이 한 마리에도 똥줄이 탑니다
무당이라니오
하긴 예수도 예수이고 싶었을까요
신당도 없이 바람 막아줄 집도 정당도 없이
말장난 같은 이름에 갇힌 풍찬노숙의 생
무당 맞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 신휘 시인의 「실직」의 한 구절 변용함.
⸺시집 『예를 들어 무당거미』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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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 1962년 남원 출생. 1991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마늘 촛불』 『따뜻한 외면』 『꽃 아닌 것 없다』 『고요한 저녁이 왔다』 『예를 들어 무당거미』청소년 시집 『운동장 편지』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 디카시집 『허수아비는 허수아비다』 교육 에세이집 『선생님 마음 사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