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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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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눈엽嫩葉/구재기

시낭송행복플러스 2022. 7. 26. 07:05

눈엽嫩葉

 

   구재기

 

 

 

물은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

골짜기 작은 물도

바다에 이르는 큰물도 모두 흐른다

삽 한 자루가 길을 돌려놓아도

위에서 아래로

타고난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

 

우듬지의 끝

온기를 가득 품은 바람이 흐른다

된서리에 시달리던 하늘이

검은 구름을 벗기 시작하고

가느스름 열리는 눈길이 탁 트여

눈물지을 만큼 자꾸만 슬퍼져 간다

 

생각하면 모두가

일어서고 사라져온 것들

매 순간 거듭하면서 흐르고

까마득하다 보면 다시 보이는 것들

나라거나 내 것이라거나 젖어 들다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마구 부추겨지는데

 

큰 나무 땅속뿌리에도

물 흐름은 여전하고 있는가

완전히 소멸된 경지가

열반에 들어서야 이루어가듯

바야흐로 지상에는, 함초롬히

두 눈 크게 뜨는 눈엽의 세상

 

 

            —계간 《시사사》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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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기/ 1950년 충남 서천 출생. 1978년 《현대시학》추천 등단. 시집『편안한 흔들림』『추가 서면 시계도 선다』『공존共存』등 십여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