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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본문

[명시산책]/이서윤 시낭송모음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시낭송행복플러스 2022. 8. 5. 17:45

 

[한국현대대표시]그리운 바다 성산포/시 이생진, 시낭송/이서윤 #제주도#성산포일출#섬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했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놓아주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이생진 시인/ 1929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서울 보성중학교 교직을 끝으로 평생을 바다와 섬으로 떠돌며 시를 써왔다.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1996년 '먼 섬에 가고 싶다'로 윤동주 문학상을, 2002년 '혼자 사는 어머니'로 상화 시인상을, 2001년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제주도 명예 도민증을 받았다.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잘 알려져 있으며 '바다에 오는 이유', '섬에 오는 이야기', '섬마다 그리움이', '개미와 배짱이', '먼 섬에 가고 싶다', '하늘에 있는 섬' 등 주로 섬에 관한 시를 많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