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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헌화가 - 임동확

시낭송행복플러스 2014. 6. 15. 10:14

헌화가
임동확


저 꽃을 내 기꺼이 그대에게 꺾어 바치리 미처 뒤돌아볼 새 없이 앞만 보고 과속해도 끝없이 추월당하는 잘못 든 생의 고속도로를 비웃듯 순식간에 늙음도, 흐르는 시간도 멈춰버린 수로여 어찌 그저 발만 동동 구르거나 더 이상 어쩔 수 없음을 변명 삼아 맨주먹으로 땅바닥이나 내리치며 탄식하고 있으리 어찌 즐겨, 한때 내 비록 자랑스럽지는 않았으나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내 청춘의 붉고 흰 추억의 꽃타래 한 묶음쯤 그대에게 엮어 바치지 않으리 귀신도, 물짐승도, 공중을 나는 수컷의 새 한 마리도 육향에 취해 그저 부끄럼도 잊은 채 앞다투어 발정하며 길을 막는데, 아무도 생각해 내지 못할 마로니에 공원 미끄럼틀 아래 매달린 쇠줄그네를 약속 장소로 택한 그대 위해, 내 어찌 꽉 쥔 생의 핸들을 놓치지 않으려 머뭇거리리
- 지금 불로 익힌 지상의 어떤 음식보다 달고 향기로운 제 몸 속의 훈향에 제가 먼저 감동해, 어딘론가 서둘러 닿으려는 모든 발길을 멈추게 하며 홀연 가는 곳마다 황홀한 천리향으로 타오르는 수로여 -
살아서 닿을 수 없는 저 그리움의 절벽을 발판 삼아 그 찬란하고 뜨거운 열반의 정화수에 내 아픈 한 몸 누이리 차라리 육탈해 멈추지 않는 노래의 향기로 둥글게 퍼져오는 그대 위해, 어찌 저 죽음의 파도 일렁거리는 천길 낭떠러지인들 마다하리

 

 

 

 

 

 

임동확 시인/ 젊은 시절 부분과 전체, 개인과 집단 간의 갈등과 화해에 대한 큰 의단疑端을 품은 바 있다. 그러다가 후일 그 문제가 동아시아적 생성의 사유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대학원에서「생성의 사유와 무의 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문학 연구자이면서 시대정신과 생에 대한 깊은 연민에 뿌리를 둔 깊이 있는 사유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시인이다. 세상의 모순과 불화에 주목하면서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궁극적인 화해와 소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21세기에도 여전히 서구 담론에 마냥 끌려 다닐 수 없다는 생각에 인류의 대안적 사유와 삶의 방식과 연결시켜 자생적이고 주체적인 삶과 정신의 담론의 가능성을 꾸준하게 모색하고 실천해오고 있는 중이다.

 

특히 시를 쓰고, 읽어주고, 가르치는 모든 과정을 일종의 종교적 제의로 받아들이며 문학과 학문을 병행하는 점에서 당대에 보기 드문 인문주의적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장시편』을 펴내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시인이 지은 책으로는 시집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 『운주사 가는 길』, 『벽을 문으로』, 『처음 사랑을 느꼈다』, 『나는 오래 전에도 여기 있었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시화집『내 애인은 왼손잡이』, 시선집 『꿈, 어떤 맑은 날』, 산문집 『들키고 싶은 비밀』, 시론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생성의 시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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