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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수제비 잘 뜨는 법 - 손택수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물 수제비 잘 뜨는 법 - 손택수

시낭송행복플러스 2014. 9. 29. 08:12

 

물 수제비 잘 뜨는 법

손택수

 

 

1

물결의 미끄러움에 우선 볼을 부볐다 땔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돌을 찾아 한 나절쯤을 순전히
길바닥만 보고 돌아다녀본 적이 있는가
무엇보다 손바닥에 폭 감싸인 돌을 만지작 만지작
내 체온과 맥박 소리를 돌에게 고스란히 전달해본 적이 있는가
돌을 쥘 땐 꽃잎을 감싸쥐듯, 돌을 날릴 땐 나뭇가지가
꽃잎을 놓아주듯 미련을 두지 않아야 한다
바람 한 점 없는데 나뭇가지가 툭, 자신을 흔들 때의 느낌으로
손목 스냅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 그건
이별의 끝에서 돌과 함께 날아갈 채비가 되어 있다는 거다

스침에도 몰입이 있어, 딱
성냥을 긋듯이
단번에 한점을 향해 화락
타들어가는 정신,

 


2

그러나 처음 물에 닿은 돌을 튕겨올린 건 내가 아니라 수면이다
나의 일은 수면을 깨우는 것으로 족하다 그 다음 돌을 튕겨올리는
건 물결들이 알아서 할 일 앞물결의 설레임이 뒷물결까지 이어지도록
그냥 내버려 둘 일

똑똑똑 가능한 긴 노크 속에
나른하게 퍼져 있던 수면을 바짝 잡아당기면서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물수제비를 날려봐야 한다
물끄러미 물결의 미끄러움에 볼을 부볐다 땔 줄 알아야 한다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창작과 비평사 2014)

 

 

손택수 시인/ 1970년 전남 담양 강쟁리에서 태어난 뒤 부산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지독한 향수병과 짝사랑을 앓다가 암울한 문학소년 시절을 보내고,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국제신문 신춘문예에도 시가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호랑이 발자국'과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청소년을 위한 고전산문 '바다를 품은 자산어보' 등이 있다. 신동엽 창작상, 이수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제13회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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