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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우리를 체포하던 날 - 손택수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꽃들이 우리를 체포하던 날 - 손택수

시낭송행복플러스 2014. 10. 16. 16:02

꽃들이 우리를 체포하던 날

손택수

 

쌍용차 희생자 스물네 분의 분향소가 있는 덕수궁 대한문 앞

식목일 새벽에 중구청이 분향소를 철거하더니

그 자리에 화단을 만들었다

사연도 모르고 마냥 해사하게 피어난 꽃들이라니

하긴, 방학 동안 철거용역 알바를 하고

학비를 마련하는 대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졸업을 해도 취직은 되질 않고

대출 받은 학자금 이자 갚느라 결혼도 미루면서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학생을 나도 안다

그래도 그렇지 한참 푸르를 나이에 철거용역이 뭔가

제 가난한 어미 같은 이의 집을 부수며 살아야 할 이유라는 게 뭔가

외면하다가도, 벗어날 수 없는 처지와 그 발버둥을 헤아리면

나는 함부로 돌멩일 던질 수가 없는데

아무래도 꽃의 죄까지 엄히 따져야 할 시대가 닥친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치욕의 연대를 이해해야 할 시대가 와버린 모양이다

화단으로 들어가면 즉석에서 현장범으로 체포한다는 대한

펜스를 치고 철야경비까지 서는 문 앞에서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비 2014 )

 

 

  

손택수 시인/ 1970년 전남 담양 강쟁리에서 태어난 뒤 부산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지독한 향수병과 짝사랑을 앓다가 암울한 문학소년 시절을 보내고,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국제신문 신춘문예에도 시가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호랑이 발자국'과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청소년을 위한 고전산문 '바다를 품은 자산어보' 등이 있다. 신동엽 창작상, 이수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제13회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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