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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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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주제별 좋은시

[스크랩] 11월에 관한 시모음

시낭송행복플러스 2014. 11. 3. 01:51

 

 

 

                                                                                           사진-다음카페이미지

 

 

그리운 편지/ 이응준

 

그 도시에서 11월은 정말 힘들었네

그대는 한없이 먼 피안으로 가라앉았고

나는 잊혀지는 그대 얼굴에 날 부비며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가에 대하여

덧없이 많은 날들을 기다렸지만

무엇이 우리 주위에서 부쩍부쩍 자라나

안개보다도 높게 사방을 덮어가는가를

끝내 알 수는 없었네

11월이 너무 견디기 어려웠던

그 도시에서 그대가 가지고 있던

백 가지 슬픔 중에

아흔아홉으로 노래 지어 부르던

못 견디게 그리운 나는

 

 

 

11월/ 유안진

 

무어라고 미처
이름 붙이기도 전에
종교의 계절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사랑은 차라리
달디단 살과 즙의
가을 열매가 아니라

한 마디에 자지러지고 마는
단풍잎이었습니다

두 눈에는 강물이 길을 열고
영혼의 심지에도
촉수가 높아졌습니다

종교의 계절은 깊어만 갑니다
그대 나에게
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11월/ 고은

 

             아무도 없어서는 안된다

서 있는 것들은

저바다 빈 나무로 서 있고

나도 그들과 함께 서서

오래오래 묵은 소리로

우수수 우수수 몰려가는

이 세상의 여호와여 낙엽이여

내가 서서 빈 나무 되어도

나무는 나무끼리

더 이상 가깝지 않게

나무 사이의 어린 나무에게

흐른 하늘을 떼어 준다

바람 속에서 바람도 몸임을 알아라

바람으로 태어나

내 아들로 여호와로

이 황량한 곳을 살게 하누나

아무도 없어서는 안된다

빈 나무끼리 서서

너이들 없이

어찌 이세상 壁靑으로 녹이 슬겠느냐

진 잎새 제 뿌리 위를 덮고

             사람들도 설움도 그 일부는 덮었구나

 

 

 

11월/ 오세영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
돌아보면
다들 떠나갔구나,
제 있을 꽃자리
제 있을 잎자리
빈들을 지키는 건 갈대뿐이다.
상강(霜降).
서릿발 차가운 칼날 앞에서
꽃은 꽃끼리, 잎은 잎끼리
맨땅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만
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
시대를 통곡한다.
시들어 썩기보다
말라 부서지기를 택하는 그의
인동(忍冬),
갈대는
목숨들이 가장 낮은 땅을 찾아
몸을 눕힐 때
오히려 하늘을 향해 선다.
해를 받든다.

 

 

 

11월/ 이성복

 

1

등 뒤로 손을 뻗치면 죽은 꽃들이 만져지네

네게서 와서 아직 네게로 돌아가지 못한 것들

손을 빼치면 온통 찐득이는 콜타르 투성이네

눈을 가리면 손가락 사이로 행진해가는 황모파

승려들, 그들의 옷은 11월의 진흙과 안개

김밥 마는 대발처럼 촘촘한 날들 사이로 밥알

같은 흰 꽃 하나 묻어 있었네 오랜 옛날얘기였네

 

2

그대 살 속에 십 촉짜리 전구 수천 빛나고

세포 하나하나마다 곱절 크기의 추억들

법석거리니 너무 어지러워 눈을 감아도

환하고 눈뜨면 또 어지러워 늘 다니던

길들이 왜 이리 늙어 보이는지 펼쳐놓은

통치마 같은 길 위로 날들은 지나가네

타이탄 트럭에 실려 시내로 들어가는 분홍빛

얼굴의 돼지들처럼 침과 거품 흐르는 주둥이로

나 완강한 쇠창살 마구 박아보았네 그 쇠창살

침과 거품 흘러내려 흰 고드름 궁전 같았네

 

3

11월, 천형의 땅 삶긴 번데기처럼 식은
국물위에서 11월, 기다리지 않았으므로
노크 한번 하지 않았으므로 11월, 미구에
감긴 눈으로 쏟아져들어올 흰 눈 흰 밀가루
포대 터져 은박지로 구겨질 겨울 11월,
이젠 힘이 부쳐 일어서지 않는 성기
포르노처럼 선명한 욕망의 밑그림 11월,
삼켜지지 않는 뜨거운 수제비알 같은 여름

 

4

겨울의 입구에서 장미는

붉은 비로드의 눈을 뜨고

흰속눈썹처럼 흔들리는 갈대

돼지 멱따는 소리로 우는

가을꽃들의 울음을 나는

듣지 못한다 초록 네온사인

'레스토랑 청산' 위로 비가

내리고 나는 세상의 젖은 몸

위에 "사랑한다"라고 쓴다

 

 

 

11월의 나무/ 황지우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11월의 시 / 임영준

 

 

모두 떠나는가

텅 빈 하늘 아래
추레한 인내만이
선을 긋고 있는데
훌훌 털고 사라지는가

아직도 못다 지핀
詩들이 수두룩한데
가랑잎 더미에
시름을 떠넘기고

굼뜬 나를 버려둔 채
황급히 떠나야만 하는가

 

 

 

11월/ 이외수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 비우고

초연히 겨울로 떠나는 모습

독약 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은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상처 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

 

 

 

11월의 편지 / 목필균

지구가 뜨거워졌는지
내가 뜨거워졌는지
아직 단풍이 곱다

갈색 플라타나스 너른 잎새에
네 모습이 서있고

11월이 되고서도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
꼬깃꼬깃 접힌 채
쓸려간다

모니터에 네 전령처럼
개미 한마리
속없이 배회하는 밤이 깊다

네가 그립다고
말하기보다 이렇게 밤을 밝힌다
11월 그 어느 날에

 

 

 

11월의 나무처럼/ 이해인

사랑이 너무 많아도
사랑이 너무 적어도
사람들은 쓸쓸하다고 말하네요

보이게
보이지 않게
큰 사랑을 주신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찾지 못해
나도 조금은 쓸쓸한 가을이에요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어놓은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욕심의 그늘로 괴로웠던 자리에
고운 새 한 마리 앉히고 싶어요

11월의 청빈한 나무들처럼
나도 작별 인사를 잘하며
갈 길을 가야겠어요

 

 

 

11월/ 나희덕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길가에 풀들을 더럽히며 빗줄기가 지나간다

희미한 햇살이라도 잠시 들면

거리마다 풀들이 상처를 넣어 말리고 있다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에

모든 것은 예고에 불과한 고통일 뿐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모든 것은 겨울을 이길 만한 눈동자들이다

 

 

 

11월/ 박영근

 

             바람은

나무들이 끊임없이 떨구는 옛기억들을 받아

저렇게 또다른 길을 만들고

홀로 깊어질 만큼 깊어져

다른 이름으로 떠돌고 있는 우리들 그 헛된 아우성을

쓸어주는구나

혼자 걷는 길이 우리의 육신을 마르게 하는 동안

떨어질 한 잎살의 슬픔도 없이

바람 속으로 몸통과 가지를 치켜든 나무들

마음 속에 일렁이는 殘燈이여

누구를 불러야 하리

부디

깊어져라

삶이 더 헐벗은 날들을 받아들일 때까지

 

 

 

11월이 전하는 말/ 반기룡

 

한 사람이 서 있네
그 옆에 한 사람이 다가서네
이윽고 11이 되네
서로가 기댈 수 있고 의탁이 되네
직립의 뿌리를 깊게 내린 채
나란히 나란히 걸어가시네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꿈쩍하지 않을 곧은 보행을 하고 싶네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만나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올곧은 모습으로
어기여차 어기여차
장단에 맞춰 풍악에 맞춰
사뿐히 사뿐히 걸어가시네

삭풍이 후려쳐도
평형감각 잃지 않을
온전한 11자로 자리매김하고 싶네

 

 




 

출처 : 한국명시낭송클럽
글쓴이 : 이서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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