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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여행에 관한 시 모음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주제별 좋은시

여행에 관한 시 모음

시낭송행복플러스 2015. 4. 2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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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여행/김동리 소설가(1913-1995)

 

달리는 차장 밖으로 고향 같은
마을이 내다뵌다
집집마다 감나무 대추나무
잎새들 몹시 반짝거려
동네가 환히 들여다보인다
툇마루마다 반들반들 닦아져 있고
방안엔 머리 감아 빗은
달덩이 같은 처녀 꽃수틀 안고 있네
그 앞집 부엌에선
떡시루 김 오르는 거 보이고, 또
그 옆집 말끔히 슬어진 뜰의
뽀얀 흙 위엔 암탉 한 마리 졸고
그 곁으로 어린애기 아장 걸어가고 있네
"아, 저기는 내 고향,
내가 자라던 동네
저 아장아장 걷고 있는 애기는
바로 내가 아닐까", 하는 순간
기차는 새된 기적 소리를 지르며
시커먼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낯선 곳/ 고은 (1933-)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아기가 만들어낸 말의 새로움으로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그 낯선 곳으로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

 

 


여행/박경리 (1926-2008)

 

나는 거의 여행을 하지 않았다
피치 못할 일로 외출해야 할 때도
그 전날부터 어수선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릴적에는 나다니기를 싫어한 나를
구멍지기라 하며 어머니는 꾸중했다
바깥세상이 두려웠는지
낯설어서 그랬는지 알수가 없다

그러나 나도 남 못지않은 나그네였다
내 방식대로 진종일 대부분의 시간
혼자서 여행을 했다
꿈속에서도 여행을 했고
서산 바라보면서도 여행을 했고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서억서억 톱이 움직이며
나무의 살갗이 찍기는 것을
그럴 때도 여행을 했고
밭을 맬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여행을 했다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혹은 배를 타고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보다 은밀하고 내면으로 내면으로
촘촘하고 섬세했으며
다양하고 풍성했다

행선지도 있었고 귀착지도 있었다
바이칼 호수도 있었으며
밤하늘의 별이 크다는 사하라 사막
작가이기도 했던 어떤 여자가
사막을 건너면서 신의 계시를 받아
메테르니히와 러시아 황제 사이를 오가며
신성동맹을 주선했다는 사연이 있는
그 별이 큰 사막의 밤하늘

히말라야의 짐진 노새와 야크의 슬픈 풍경
마음의 여행이든 현실적인 여행이든
사라졌다간 되돌아오기도 하는
기억의 눈보라
안개이며 구름이며 몽환이긴 매일반
다만 내 글 모두가
정처없던 그 여행기 여행의 기록일 것이다

 

 

 

여행기/임영준 시인(1956-)

 

스쳐가는 사람들 모두
뭉게구름을 타고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들은
나룻배 위에서 한가로이
바람 따라 흔들리고

물결은 온갖 꽃으로 만발하여
권태를 속속들이 파고 들었다

노을이 멈추는 마을까지
산 몇 개쯤은 단박에 열렸고

모닥불 사이에서 날밤이
노릇노릇 무르익을 때쯤이면
별이 하얗게 쏟아져 내렸다

 

 

 

어느 날 하루는 여행을/용혜원 시인 (1952-)

 

어느 날 하루는 여행을 떠나
발길 닿는 대로 가야겠습니다
그 날은 누구를 꼭 만나거나 무슨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의 짐을 지지 않아서 좋을것입니다

하늘도 땅도 달라 보이고
살아 있는 표정을 만나고 싶습니다

시골 아낙네의 모습에서
농부의 모습에서
어부의 모습에서
개구쟁이의 모습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알고 싶습니다

정류장에서 만난 삶들에게 목례를 하고
산길에서 웃음으로 길을 묻고
옆자리의 시선도 만나
오며 가며 잃었던 나를 만나야겠습니다

아침이면 숲길에서 나무들의 이야기를 묻고
구름 떠나는 이유를 알고
파도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저녁이 오면 인생의 모든 이야기를
하룻밤에 만들고 싶습니다
돌아올 때는 비밀스런 이야기로
행복한 웃음을 띄우겠습니다

 

 

 

여행지에서/ 김재진(1955-)

 

사람들이 지나가고 또 지나갔어요
아무도 만난 사람은 없어요
아 도시에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방심한 마음으로 기다렸을 뿐이지요.

멀리서 누군가 손 흔들면 나도 발돋움하며
따라서 손 흘들었지요
아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기다리는 동안 어느새 동화책 한 권을 다 읽었어요.

동화처럼 살고 싶어요. 아니면 영화처럼
아무도 오지 않더라도 그저 나무처럼 서 있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어요.

어디선가 지금 기차가 지나가고
영화관 속에선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사람도 있을거예요.

배낭위에 걸터앉아 나를 보는 사람이 있어요
그도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여행이란 다 그래요
사실은 기다리는 연습인걸요
기다리는 동안 그저 우두커니
스스로를 보는거죠

내가 나를 기다린다는 말, 우습나요?
언젠가 알게 될 거예요. 머지 않은 훗날
누군가를 기다리며 당신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어딘가에서
당신을 들여다보게 될 거예요.

 

 

 

여행/ 손광세 시인(1945-)

 

떠나면 만난다.
그것이 무엇이건
떠나면 만나게 된다.
잔뜩 찌푸린 날씨이거나
속잎을 열고 나오는 새벽 파도이거나
내가 있건 없건 스쳐갈
스카프 두른 바람이거나
모래톱에 떠밀려온 조개껍질이거나
조개껍질처럼 뽀얀 낱말이거나
아직은 만나지 못한 무언가를
떠나면 만난다.
섬 마을을 찾아가는 뱃고동 소리이거나
흘러간 유행가 가락이거나
여가수의 목에 달라붙은
애절한 슬픔이거나
사각봉투에 담아 보낸 연정이거나
소주 한 잔 건넬 줄 아는
텁텁한 인정이거나
머리카락 쓸어 넘기는 여인이냐
못 만나더라도
떠나면 만난다.
방구석에 결코 만날 수 없는 무언가를
떠나면 만나게 된다.
산허리에 뭉게구름 피어오르고
은사시나무 잎새들
배를 뒤집는 여름날
혼자면 어떻게
여럿이면 또 어떤가?
배낭 매고 기차 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볼 일이다.

 

 

 

여행/ 윤성택 시인(1972-)

 

여정이 일치하는 그곳에 당신이 있고
길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시간은 망명과 같아 아무도 그
서사의끝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끝끝내 완성될 운명이
이렇게 읽히고 있다는 사실,
사랑은 단 한번 펼친면의 첫줄에서
비유된다 이제 더 이상
우연한 방식의 이야기는 없다
그곳에 도착했으니 가방은
조용해지고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여행은 항상 당신의 궤도에 있다

 

 

 

여행/ 이여진 시인(전남 해남출생)

 

강물 같은 세월속에 부서진
혼신의 파편을 모아
마지막 모닥불을 지피는 정열로
당신과 여행을 하고 싶다.

이름 없는 작은 포구의
선술집 목로에서
정담을 나누며
마시는 한잔 술에
추억을 쏟아내며
그렇게 밤을 지새고 싶다.

세상의 추한 바람과
시샘의 눈총에도 아랑곳 않고
물욕고 육욕도 없는 세상을 찾아
그렇게 당신과 여행을 하고 싶다.

이제는 퇴색해 흔적조차 알 수 없는
유년의 방으로
돌아가고 싶다
아득한 고향 그 꿈속으로
그렇게 당신과 여행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