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국명시낭송예술인연합회 정길섭작가
꽃의 말/ 황금찬 시인( 1918-)
사람아 입이 꽃처럼 고와라 그래야 말도 꽃처럼 하리라 사람아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조병화 시인(1921-2003)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세상 어지럽게 많은 말들을 뿌렸습니다" 다 잊어 주십시오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다 잊어 주십시오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당신의 사랑의 은혜 무량했습니다" 보답 못한 거 다 잊어 주십시오 아,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다 잊어 주십시오
말의 힘/황인숙·시인(1958-)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기분 좋은 말을 소리내보자.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비!
머릿속에 가득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 느낌표들을 밟아보자. 만져보자. 핥아보자. 깨물어보자. 맞아보자. 터뜨려보자!
말의 빛/ 이해인·수녀(1945-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시)
쓰면 쓸수록 정드는 오래된 말 닦을수록 빛을 내며 자라는 고운 우리말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억지 부리지 않아도 하늘에 절로 피는 노을 빛 나를 내어주려고 내가 타오르는 빛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언제나 부담 없는 푸르른 소나무 빛 나를 키우려고 내가 싱그러워지는 빛
"용서하세요"라는 말은 부끄러워 스러지는 겸허한 반딧불 빛 나를 비우려고 내가 작아지는 빛
흰 종이의 숨결/ 정현종 시인(1939-)
흔히 한 장의 백지가 그 위에 쓰여지는 말보다 더 깊고, 그 가장자리는 허공에 닿아 있으므로 가없는 무슨 소리를 울려 보내고 있는 때가 많다. 거기 쓰는 말이 그 흰 종이의 숨결을 손상하지 않는다면, 상품이고 허공의 숨결로 숨을 쉰다면, 명품이다.
신이 내게 묻는다면/ 천양희 시인(1942-)
무너진 흙더미 속에서 풀이 돋는다
신이 내게 묻는다면 오늘, 내가 무슨 말을 하리 저 미물보다 더 무엇이라고 말을 하리 다만 부끄러워 때때로 울었노라 대답할 수 있을 뿐
풀은 자라 푸른 숲을 이루고 조용히 그늘을 만들 때 말만 많은 우리 뼈대도 없이 볼품도 없이 키만 커간다
신이 내게 묻는다면 오늘 내가 무슨 말을 하리 다만 부끄러워 때때로 울었노라 대답할 수 있을 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김용택 시인(1918-)
세상에서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그보다 더 따뜻할 수 있는 그보다 더 빛나는 말이 있을리 없겠지요 당신...
나를 키우는 말/ 이해인 시인(1945-)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저곳/ 박형준 시인(1966-)
공중이란 말 참 좋지요 중심이 비어서 새들이 꽉찬 저곳 그대와 그 안에서 밤을 들이고 아이를 낳고 냄새를 피웠으면 공중이라는 말 뼛속이 비어서 하늘 끝까지 날아가는 새떼
햇빛이 말을 걸다/권대웅 시인(1962-)
길을 걷는데 햇빛이 이마를 툭 건드린다 봄이야 그 말을 하나 하려고 수백 광년을 달려온 빛 하나가 내 이마를 건드리며 떨어진것이다 나무 한 잎 피우려고 잠든 꽃잎의 눈꺼풀 깨우려고 지상에 내려오는 햇빛들 나에게 사명을 다하며 떨어진 햇빛을 보다가 문득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햇빛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강물에게 나뭇잎에게 세상의 모든 플랑크톤들에게 말을 걸며 내려온다는 것을 알았다 반짝이며 날아가는 물방울들 초록으로 빨강으로 답하는 풀잎들 꽃들 눈부심으로 가득 차 서로 통하고 있었다 봄이야 라고 말하며 떨어지는 햇빛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의 소리를 듣고 푸른 귀 하나가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좋은 말을 하고 살면/ 오광수 시인(1953-)
말 한 마디가 당신입니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아름다운 말을 하면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말 한 마디가 당신의 생활입니다 험한 말을 하는 생활은 험할 수 밖에 없고 고운 말을 하는 생활은 고와집니다 말 한 마디가 당신의 이웃입니다 친절한 말을 하면 모두 친절한 이웃이 되고 거친 말을 하면 거북한관계가 됩니다 말 한 마디가 당신의 미래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면 아름다운 소망을 이루지만 부정적인 말을 하면 실패만 되풀이됩니다 말 한 마디에 이제 당신이 달라집니다 예의 바르며 겸손한 말은 존경을 받습니다 진실하며 자신있는 말은 신뢰를 받습니다 좋은 말을 하고 살면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백지의 말/ 이기철 시인(1943-)
나의 몸은 언제나 하얗게 비워두겠습니다 네 모는 날카로워도 속은 늘 부드럽겠습니다 설령 글씨를 썼다 해도 여백은 늘 갖고 있겠습니다 진한 물감이 있어도 내 몸을 칠하지 않겠습니다 가까이 가고 싶어도 늘 멀리 떨어져 있겠습니다 바람이 불면 납작하게 엎드리겠습니다 칼날이 다가오면 물처럼 연해지겠습니다 그러나 불빛에는 되도록 반짝이겠습니다 노래가 다가오면 치렁치렁 몸으로 받겠습니다 언제나 당신이 들어올 문을 열어두겠습니다 당신이 들어오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향기가 되겠습니다 그땐 당신이 내 몸에 단 한 폭 그림을 그리십시오 그러기 위해 한 필 붓을 마련해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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