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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내게는 느티나무가 있다2/권혁웅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내게는 느티나무가 있다2/권혁웅

시낭송행복플러스 2015. 9. 11. 08:09

내게는 느티나무가 있다 2

권혁웅



 

느티의 가계(家系)에도 내통이라는 게 있지
구석구석 푸른 구름을 거느리고 있지
이를테면 수화를 나누듯 잎을 뒤집을 때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이라고 발음하는 거지
그러면 구름이 말풍선처럼 부풀어 오르지
저 너머 선산에서 할머니가 걸어 나오지
느티는 내게 몸을 기대며 슬쩍 정을 통하지
가령 난장(亂場)의 무대에서 걸어 나와 관객을 향해
혼잣말하는 사람처럼
그와 나 사이엔 이심전심이 있지 아버지가 뒤엎은 밥상처럼
바람이 쏴쏴 밀려나오지
그가 나와 내통할 때
내 몸의 물관과 체관을 오르는 게 있지
몰래 옷 갈아입다 들킨 누나들처럼
숨겨둔 자의식이 달아오르지
겨울에도 옷을 벗는 거지 느티는
잎들이 아니라도 무성한 거지



      - (『마징가 계보』창비 2005)



권혁웅 시인/ 1967년 충주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황금나무 아래서』,『마징가 계보학』,『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소문들』이 있으며, 평론집 『미래파』, 이론서 『시론』, 산문집 『두근두근』등이 있으며, 전 세계의 신화를 정신분석의 논리로 읽은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신화에 숨은 열여섯가지 사랑의 코드』, 『몬스터 멜랑콜리아』, 시선집 『당신을 읽는 시간』『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등을 펴냈다.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이다. 2012년 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