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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양파 공동체/ 손미 본문
양파 공동체
손미
그러니 이제 열쇠를 다오. 조금만 견디면 그곳에 도착한다.
마중 나오는 싹을 얇게 저며 얼굴에 쌓고, 그 아래 열쇠를 숨겨 두길 바란다.
부화하는 열쇠에게 비밀을 말하는 건 올바른가?
이제 들여보내 다오. 나는 쪼개지고 부서지고 얇아지는 양파를 쥐고 기도했다.
도착하면 뒷문을 열어야지. 뒷문을 열면 비탈진 숲, 숲을 지나면 시냇물.
굴러떨어진 양파는 첨벙첨벙 건너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사라질 수 있겠다.
나는 때때로 양파에 입을 그린 뒤 얼싸안고 울고 싶다.
흰 방들이 꽉꽉 차 있는 양파를.
문 열면 무수한 미로들.
오랫동안 문 앞에 앉아 양파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때때로 쪼개고 열어 흰 방에 내리는 조용한 비를 지켜보았다.
내 비밀을 이 속에 감추는 건 올바른가. 꽉꽉찬 보따리를 양손에 쥐고
조금만 참으면 도착할 수 있다.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내 집.
작아지는 양파를 발로 차며 속으로, 속으로만 가는 것은 올바른가.
입을 다문 채 이 자리에서 투명하게 변해 가는 것은 올바른가.
ㅡ시집 (『양파공동체』,민음사 2013)
손미 시인/1982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2009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양파 공동체]로 제32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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