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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혹은 낙타/ 서정연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낙태 혹은 낙타/ 서정연

시낭송행복플러스 2016. 3. 6. 22:47



낙태 혹은 낙타

 

 서정연

 

    

바람, 바람을 타고

물오른 나무마다 가만가만 속살대는 꽃, 꽃잎들.

얼마나 지났을까.

모래폭풍 사이로 잠깐 비치는 햇살처럼 느리게 더듬는 꽃,

꽃잎들.

 

아득히 아득하게

분명 둘이서 나눈 숨결인데

혼자서 女子 혼자서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건넌다.

스르륵 떨어지는 꽃, 꽃잎들.

검은 입속에서

스르륵 스르륵 홀러나오는 꽃, 꽃잎들.

 

다음엔 모래를 낳을 거야.

 

꽃잎을 버리고,

눈물을 버리고 하얗고 검은 밤을 건널 거야.

 

형체도 없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벌레, 벌레들. 女子는 평생 뜯어내야 할 벌레들을

입안으로 삼킨다.

사막을 삼킨다.

 

 

 

             —시집(『목련의 방식』(문학의 전당 2016)



서정연 / 전남 나주 출생. 2012년 《심상》신인상 당선으로 작품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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