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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라일락과 한철/이윤정

시낭송행복플러스 2016. 12. 16. 15:46



라일락과 한철

 

   이윤정

 

  

라일락꽃 앞에 서 있다

이렇게 당신을 본다는 것이 꿈은 아닐까 생각하다가

꽃의 말을 듣느라 밤이 늦은 줄도 모르고

소곤거리는 저 말 다 듣느라 창을 닫지 못했다

 

내가 건넨 말을 버리고 떠난 당신을 생각하는 밤은 짧고

라일락이라는 말을 반복하면

고요가 깨어지고 잊고 있던 얼굴이 걸어 나온다

당신 말에는 향기가 났고 우리는 그 밤을 떠나지 않았다

바람에 날리는 꽃무늬 원피스에서

이야기는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해 봄은 어디쯤에서 멈출 것인지

예측할 수 없는 날을 흘려보냈다

 

원피스가 오래되어 낡았을 거라는 생각은 잘못 되었다

꽃을 본다

이렇게 꽃의 말을 다 들어준다

그 말은 빛과 같아서 사그라지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야기를 듣는다

당신을 놓지 못하고 듣는다

 

오래전 보았던 얼굴이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처음 보는 꽃이 내 앞에 서 있다

나는 아직 당신을 보내지 않았다

 

 


           —《시인동네》2016년 11월호



이윤정 / 1961년 대구 출생. 2016년 〈세계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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