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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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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연필/ 김기택

시낭송행복플러스 2016. 12. 26. 17:00



연필

 

  김기택

 


 

떨어진 연필이 굴러간다

뱀처럼 벌레처럼

제 기럭지를 구부렸다 펴면서 가지는 못하고

옆으로 굴러서만 간다

 

굴러가는 둥근 면에서

수많은 짧은 다리들이 나오고 있다

 

연필 속에서 광물성 내장 터지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를 여과시켜서

나무는 가볍고 맑은 소리를 낸다

뾰족했던 연필심도 덩달아 뭉툭해진다

 

도망가는 연필을 잡자마자

다리는 연필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손가락이 연필을 꽉 쥘 때

흰 종이 밑으로 지층이 깊어질 때

짧고 힘찬 진동이 연필 속에서 버둥거린다

 

연필 지나간 자리에

걷다가 머뭇거리다 멈추다

종이가 패이도록 달린 발자국이 남는다

 

 

          —《시인동네》2016년 12월호



김기택 / 1957년 경기 안양 출생. 1989년 〈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태아의 잠』『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소』『껌』『갈라진다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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