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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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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옛집 소묘/엄정숙

시낭송행복플러스 2016. 12. 26. 16:57



옛집 소묘 

—아기 보는 소녀*

 

   엄정숙

 

     

아무도 없는 저녁이 무서워

어린 나는 막내 동생을 업고

동네 어귀 돌벅수 곁에서

큰집 제사에 간 어머니를 기다렸다

방앗간 녹슨 양철 문마저 닫히고 나면

집으로 가는 길은 물속처럼 캄캄하고

개 짖는 소리가 여우 울음처럼 멀었다

목장승처럼 눈을 크게 뜨고

칭얼대는 동생의 작은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리면

신기하게도 어둠까지 순해져

반딧불이도 도깨비도

애기무당집 대나무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못했다

크지도 않고 철이 든 나를

수십 년이 지난 요즘

유명 화가의 그림 속에서 본다

보이지 않은 배경 속에는

세상을 떠난 부모님과 큰오빠의 얼굴과

남은 식구들은 잘살고 있다는 안부 편지가

어스름 저녁처럼 희미하게 들어 있다

 

 

  ————

  * 박수근 화가의 대표적 인물화.

 

    —시집『갈매기 학습법』(문학의 전당, 2016)


엄정숙 /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시집『갈매기 학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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