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문성해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문성해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1. 4. 08:51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문성해

 

 

 

서너 달이나 되어 전화한 내게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고 할 때

나는 밥보다 못한 인간이 된다

밥 앞에서 보란듯 밥에게 밀린 인간이 된다

그래서 정말 밥이나 한번 먹자고 만났을 때

우리는 난생처음 밖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처럼

무얼 먹을 것인가 숭고하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결국에는 보리밥 같은 것이나 앞에 두고

정말 밥 먹으러 나온 사람들처럼

묵묵히 입속으로 밥을 밀어넣을 때

나는 자꾸 밥이 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밥을 혀 속에 숨기고 웃어 보이는 것인데

그건 죽어도 밥에게 밀리기 싫어서기 때문

우리 앞에 휴전선처럼 놓인 밥상을 치우면 어떨까

우연히 밥을 먹고 만난 우리는

먼산바라기로 자꾸만 헛기침하고

왜 우리는 밥상이 가로놓여야 비로소 편안해지는가

너와 나 사이 더운 밥 냄새가 후광처럼 드리워져야

왜 비로소 입술이 열리는가

으깨지고 바숴진 음식 냄새가 공중에서 섞여야

그제야 후끈 달아오르는가

왜 단도직입이 없고 워밍업이 필요한가

오늘은 내가 밥공기를 박박 긁으며

네게 말한다

언제 한번 또 밥이나 먹자고




    —시집『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문학동네, 2016년)



문성해 / 1963년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집 『자라』『아주 친근한 소용돌이』『입술을 건너간 이름』『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아름다운 시편들 > 명시.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년 신춘문예 당선작 모음(시부문)  (0) 2017.01.06
목련의 상부/문성해  (0) 2017.01.04
연필/ 김기택  (0) 2016.12.26
맨드라미/ 하린  (0) 2016.12.26
옛집 소묘/엄정숙  (0) 2016.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