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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고흐의 휴식/김정미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4. 26. 22:28



고흐의 휴식

 

   김정미

    

 

가만가만 정오의 등을 고양이처럼 쓸어줘야겠다

팔베개한 헝겊 인형의 생각을

달력 난간에 누운 누드의 슬픔을

 

너는 모른다

귀 없이 세상 귓속말을 피리로 불던 바람의 큰 귀를

정오의 정수리에 햇살을 옮겨 심던 삽 한 자루를

절망을 베던 칼날의 푸른 절규를

세상에 떨어진 적멸의 붉은 손목 하나를

 

너는 그래,

절망은 네 온몸의 노란 혼이었을 것이다

바람이 먼저 측량한 것은

밀밭에 누운 고흐의 노란 우울이었다는 것을

구름이 흘린 눈물은 쓸쓸함의 총질량이었다는 것을

정오의 휴식*은 도마뱀보다 꼬리가 한 뼘 짧다는 것을

 

너는 모를 것이다

밀밭으로 날아온 햇살이 날개 터는 소리를

종일 해바라기처럼 눈 뜬 불면의 노란 밤을

계절과 계절 사이의 뒤척이는 바람이 가르랑거리는 소리를

 

누군가 내 꿈 쓸어 준 적 없어

햇살 이불 덮고 계절로 물들어 본 적 없어

맨발인 내 시침과 분침은

세상에 납작 엎드려 내 삶을 탁발 중이다

 

 

  ————

  * 정오의 휴식 : 고흐가 밀레의 동일 제목 그림을 재해석해 그린 그림

    

 

                      —《시와 표현》2017년 4월호



김정미 / 1968년 강원도 춘천 출생. 강원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석사 수료. 2015년 계간 《시와 소금》으로 등단. 산문집『비빔밥과 모차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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