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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난청의 시절2/ 이운진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7. 31. 09:44



난청의 시절 2

—장미와 나

 

   이운진

 

 

 

장미 화분에서 꽃이 피는데

이건 몇 데시벨의 독백이라서 들리지 않는가

 

갓 핀 장미를 쓰다듬으려다

장미 가시를 가만히 만지는 사이

 

또 한 송이 장미가 피고

내 귀에는 꽃 피는 소리 들리지 않는다

 

장미에게 가시는 영혼의 문제일까 뿌리의 문제일까

내 마음에 세운 가시는 당신의 무심일까 나의 기억일까

 

하루 종일 장미 곁을 지키다

달 쪽으로 귀를 열고 잠이 들면

 

아득한 우주의 저녁

누구도 가보지 않은 어둠속에서

늙은 별이 폭발하는 소리

 

수천 년 전이나 수만 년 후에도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내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장미는

오늘 펼친 꽃잎 한 장을 허공에 내려놓는데

 

나는 얼마나 더 멀어져가야

이 고요의 억양을 들을 수 있을 건가

 

 

                  —《열린시학》2017년 여름호




이운진/ 1971년 경남 거창 출생. 동덕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 석사 졸업. 1995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모든 기억은 종이처럼 얇아졌다』『타로 카드를 그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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