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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탁목(啄木) /손창기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7. 31. 09:16



탁목(啄木)

 

   손창기

 

 

 

나무는 그에게 대장간쯤 될까

도끼날을 갈 듯

죽은 나뭇가지에다 부리를 쪼아댄다

뚜루루루루룩, 뚜루루룩

소리를 내며 튀는 톱밥보라는 불꽃같다

 

새의 몸집이 클수록 소리가 크다

나무는 구멍을 내주고

큰 소리까지 먹느라 화덕처럼 열에 들떠 있다

옹이에다 구멍 파는 건

서툴다는 징조다, 도끼를 내려치는 것처럼

나무의 굳고 무른 그 결을 잘 타야 한다

도끼의 이빨이, 새의 부리가

뭉텅해지고 날카로운 만곡점을 수없이 지나야

누구나 마음의 결을 탈 수 있다

 

수컷이 후보 나무에 작은 구멍을

몇 개 파놓고 그대를 기다린다

안쪽 벽에다 진흙을 다져 물길을 튼다

그대 마음에 든 구멍은

불에 닿아 있기에 잉태할 수 있겠다

 

쪼아댈수록 딱따구리는 편두통이 없어지고,

사랑의 충격 흡수장치가 견고해진다

새의 복부(腹部)도 오동나무도

불을 감추고 있어 무늬와 빛깔이 새겨진다

 

 

 

             —《시와 경계》2017년 여름호



손창기 / 1967년 경북 군위 출생. 2003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달팽이 聖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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