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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고요를 시청하다/ 고재종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8. 14. 11:19



고요를 시청하다

 

   고재종

  

 

초록으로 쓸어놓은 마당을 낳은 고요는

새암가에 뭉실뭉실 수국 송이로 부푼다

 

날아갈 것 같은 감나무를 누르고 앉은 동박새가

딱 한 번 울어서 넓히는 고요의 면적,

감잎들은 유정무정을 죄다 토설하고 있다

 

작년에 담가둔 송순주 한 잔에 생각나는 건

이런 정오, 멸치국수를 말아 소반에 내놓던

어머니의 소박한 고요를

윤기 나게 닦은 마루에 꼿꼿이 앉아 들던

아버지의 묵묵한 고요,

 

초록의 군림이 점점 더해지는

마당, 담장의 덩굴장미가 내쏘는 향기는

고요의 심장을 붉은 진동으로 물들인다

 

사랑은 갔어도 가락은 남아, 그 몇 절을 안주 삼고

삼베올만치나 무수한 고요를 둘러치고 앉은

孤衾의 시골집 마루,

 

아무것도 새어나게 하지 않을 것 같은 고요가

초록 바람에 반짝반짝 누설해놓은 오월의

날 비린내 나서 더 은밀한 연주를 듣는다

 

 

 

                       —《현대문학》 2017년 6월호



고재종 / 1957년 전남 담양 출생. 1984년 14인 신인신작시집『시여 무기여』(실천문학사)로 등단. 시집 『바람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새벽 들』『사람의 등불』『날랜 사랑』『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쪽빛 문장』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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