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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묵화/ 김이흔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묵화/ 김이흔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9. 4. 09:42



묵화

 

   김이흔

 

 

  

검은 먹을 치는 묵화를 볼 때마다

 

사는 일이 흰 것과 검은 것 너머에 있는 듯하여

 

나는 자주 닥나무꽃 피는 쌍계사 팔상전을 서성이다 오곤 한다

 

한 나무 위에 올라앉은 몇 새들처럼

 

승속이 하나로 머물러 있는 묵화 속에는

 

내 생의 어느 때 만난 당신과의 인연이 있고

 

이 생과 저 생이 다를 것 없이

 

지금 붓끝 안에서 이어지고 있는

 

눅어진 호흡이 있음을 안다

 

지극히 제 죽음 속을 들여다본 자들은

 

먼 곳을 다녀와본 자들은

 

저 검은 먹색으로 피었다 지는 억겁의 생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신발 속에 두고

 

홀연히 몸을 일으켜 떠나버릴 수도 있음을

 

 

 

                 —《시인수첩》2017년 가을호



김이흔 / 1978년 전북 부안 출생. 본명 김형미.  원광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00년 〈전북일보〉신춘문예, 〈진주신문〉가을문예 시 당선.  2003년 《문학사상》신인상 시 당선.  시집『산 밖의 산으로 가는 길』『오동꽃 피기 전』, 그림 에세이집『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