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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웨이터/권혁웅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10. 9. 17:19



웨이터

 

   권혁웅

 

  

기다림이 육신이 된 것이 나다

수동을 능동으로 번역한 것이 바로 나다

반가사유상처럼 다리를 꼬고 앉아

당신이 오지 않으면 내가 왕이다, 생각한다

그래도 당신이 오지 않으면 나는 보살이다, 생각한다

아버지여, 성냔으로 만든 집이

무너지고 다시 서고 홀랑 타버릴 동안

조바심이 선지국처럼 끓는다.

당신의 자리에 선지처럼 각 잡고 앉아서

검붉은 마음과 종말론을

양다리와 좁은 비상구를 비교하다가

이미 온 사람에게 어서 오라고 채근하는 것이 나다

편한 자리에 앉으라고, 하지만

거기는 예약되어 있다고 통보하는 것이 바로 나다

아버지여, 그러니까 약속의 땅에는

외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궁지와

콘센트가 닿지 않는 벽지와

물 먹는 하마가 기다리는 음지가 있다

그리고 기다림의 아바타인 내가 있다

당신이 오고 나서도 또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나다

계산을 도와드리는 것이 나다

장회소설의 결구처럼, 그러면

그 다음을 기다려보기로 하자고 말하는 것이 바로 나다

 

 

 

                    —《시인시대》2017년 가을



권혁웅 / 1967년 충주 출생.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소문들』『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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