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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벤치/문성해 본문
벤치
문성해
나는 앉아 있었죠
더럽고 낡은 벤치 위에
벤치는 잠깐 머무는 곳
집이 아니므로
나는 어제의 누군가처럼 잠시 앉아
멍하니 호숫가 백조들을 바라보았죠
호수는 이 공원의 가장 깊은 악보
백조는 이 공원의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었으므로
나는 내일 도착할 우편물과
부랑자 시설에서 죽은 고모와
오랜 세월 이 공원에 오지 않았던 날들도 생각했죠
그리고 어느 해 겨울
부랑자 하나 서표처럼 꽂혀 있던 이곳과
그의 두꺼운 외투와 내용을 알 수 없는 보퉁이들도
그리고는 읽어 내려갔죠
그해 겨울 이곳의 주인이고 살림이고 체온이었던 그를
오래 펼쳐진 채 잠과 침과 얼룩으로 두툼해진
그의 페이지들을
악보도 선율도 어둠 속으로 스러지면
읽히지 않으려 서둘러 떠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들었죠
조용히 나의 한 페이지가 넘겨지는 소리를
오래된 공원에
두툼한 우편번호 책처럼 펼쳐진 벤치가 있죠
아주가끔씩 독서광인 나비가 앉았다 가죠
—《시사사》2017년 9-10월호
문성해 / 1963년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집 『자라』『아주 친근한 소용돌이』『입술을 건너간 이름』『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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