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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 그 다음/함성호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혼잣말, 그 다음/함성호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11. 12. 06:43



혼잣말, 그 다음

 

   함성호

 

 

 

혼잣말 그 다음—이 도시는

거대한 레코드판이 되었다

어디를 가나 혼잣말이 들려왔다

아파트 단지의 쥐똥나무 울타리를 타고 흐르고

신호를 기다리는 건널목을 가로질러

말하듯 노래하기로 다가오기도 했다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에 호수의 물결이

혼잣말로 들린 것도 그 다음이었다

혼잣말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도 했고

혼잣말이 사라진 자리를 단풍나무와 사철나무가

실망으로 우거져 내리어 메운 것도 그 다음이었다

 

새벽의 골목에서는 혼잣말의 그림자가

사방에서 포위해 오며 들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혼잣말의 홈을 따라 도는 바늘 같기도 했다

 

이 도시에 누가 혼잣말을 기록하고 다녔는지

혼잣말은 지하철로에도, 계단에도, 복도에도

유리문의 경첩에서도 투명하게 울려 나왔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혼잣말을

홀로 듣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지만

 

이 미약한 신호를 증폭시키는

내가 미친 것은

혼잣말, 그 다음이었다 

 

 

 

                     —《포지션》 2017년 가을호



함성호 / 1963년 강원도 속초 출생. 1990년 《문학과 사회》여름호로 등단. 시집 『56억 7천만 년의 고독』『聖 타즈마할』『너무 아름다운 병』『키르티무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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