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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8월의 횡단/하재연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11. 10. 00:54

8월의 횡단

 

 

하재연

 

 

 

무심코 건널목을 건너다

엄마의 호통에 깜짝 놀라는 아이를 본다.

빨간불에는 횡단하지 않는 법에 대해

한 번 두 번 세 번 아이는

배우게 될 것이다.

 

세계의 수많은 건널목을 건너다 깜짝 놀라는

아이들과

세계의 수많은 건널목을 달리다 사고를 당하는

고양이들과

내가 오늘 피하지 못한 한 고양이의 시체와

무사하게 어른이 된 한 아이의

뻗은 팔을 생각하는 8월의 저녁이다.

 

대체로

보고 싶은 당신은

횡단보도의 건너편에 서 있었다.

 

웃어야 할지 손을 들어야 할지

못 본 척하다 발견해야 할지 어색한 내가

망설이는 동안

횡단보도 건너편의 당신은 영영 사라져 있다.

 

구름에게 빛들이 조금씩 흡수되는 동안

나는 줄곧 어른이 되어 왔다.

어른이 된 건널목의 건너편에는

팔을 뻗지 못하고 아직 건너지도 못해 어색한

내가 서 있는 저녁이다.

 

 

                     —《포지션》2017년 가을호



하재연 / 1975년 서울 출생. 2002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라디오 데이즈』『세계의 모든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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