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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천돌이라는 곳/정끝별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11. 22. 18:40



천돌이라는 곳

 

   정끝별

 

 

 

목울대 밑 우묵한 곳에 손을 대면 그곳이 천돌

 

쇄골과 쇄골 사이 뼈의 지적도에도 없이

물집에 싸인 심장이 벌떡대는 곳

묶였던 목줄이 기억하는 고백의 낭떠러지

 

와요, 와서 긴 손가락으로 읽어주세요

아무나가 누구인지 무엇이 모든 것인지

 

묻어둔 술통이 따뜻해질 즈음이면

잉크빛 목소리들이 저녁 안개처럼 스며들고

혼잣말을 하며 헤매는 발자국이 하나둘 늘어나요

어떤 이름은 파고 또 파고 어떤 이름은 묻고 또 묻고 애초에 없었던 어떤 이름은 바람에 밟히기도 해요

심었다 쓰러지는 함몰된 희망에 호미 자루가 먼저 달아나기도 하는데요 그럴 때면

눈물의 밀사가 관장하는 물시계 홈통에 물 듣는 소리가 들려요

 

와요, 어서 와서 중지의 지문을 대주세요

지도에도 없는 천 개의 돌을 열어주세요

 

발소리도 없이 들었다 잠시의 별을 피워냈던 서리 입김

유리컵처럼 내던져진 너라는 텍스트의 파편과

인도코끼리만큼이나 무거운 오해의 구름들,

그리고 지리멸렬에 두 발이 묶인 지지리한 기다림이

기억의 물통에 채워질 때마다 망각의 타종 소리가 맥박처럼 요동치는 곳

 

뜻밖의 지금을 살게 한 천돌이라는 그곳

어떤 이름을 부르려 달싹이는 입술처럼

천 개의 숨이 가쁜 내 고통의 숨통

 

 

                       —《현대문학》 2017년 9월호



정끝별 / 1964년 전남 나주 출생. 1988년 《문학사상》(시), 1994년 〈동아일보〉신춘문예(평론)로 등단. 시집『자작나무 내 인생』『흰 책』『삼천갑자 복사빛』『와락』『은는이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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