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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처음의 양떼구름/이제니 본문
처음의 양떼구름
이제니
소년은 사라진 길을 가리킨다. 구름 아래에는 양떼들이 번지고 있다. 풀이 많았고 물이 많아서 소년은 양치기라고 불리었고, 소년이 양치기라 불리었으므로, 그 곁의, 양떼같이 뭉게뭉게한 털을 가진, 희고 작은 개 역시도 양치기 개라고 불리었고,
그사이, 사이, 사이,
다시 모양을 바꾸는 양떼구름들……
사라진 길을 걸어가면서, 소년은,
이것은 언젠가 보았던 그림 속 소년이 꾸는,
가장자리부터 접히며 사라지는 꿈속의 풍경 같다고
먼 나라에서는 희고 긴 성가복을 입은 소년들이
가슴에 작은 나무십자가를 매단 채 성스러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끊이지 않는 돌림노래처럼
사라지는 길 위에서 소년은 이제 목 언저리만 남아서
밤은 점점 길어지고 먹을 것은 점점 줄어들고
추위 곁에는 어느새 다가온 모닥불만이
사이,
다시 모양을 바꾸는 양떼구름들……
ㅡ《현대시》 2018년 2월호
이제니 / 1972년 부산 출생. 2008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집『아마도 아프리카』『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