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처음의 양떼구름/이제니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처음의 양떼구름/이제니

시낭송행복플러스 2018. 3. 19. 12:04



처음의 양떼구름

 

   이제니

 

 

 

소년은 사라진 길을 가리킨다. 구름 아래에는 양떼들이 번지고 있다. 풀이 많았고 물이 많아서 소년은 양치기라고 불리었고, 소년이 양치기라 불리었으므로, 그 곁의, 양떼같이 뭉게뭉게한 털을 가진, 희고 작은 개 역시도 양치기 개라고 불리었고,

 

그사이, 사이, 사이,

 

다시 모양을 바꾸는 양떼구름들……

 

사라진 길을 걸어가면서, 소년은,

이것은 언젠가 보았던 그림 속 소년이 꾸는,

가장자리부터 접히며 사라지는 꿈속의 풍경 같다고

 

먼 나라에서는 희고 긴 성가복을 입은 소년들이

가슴에 작은 나무십자가를 매단 채 성스러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끊이지 않는 돌림노래처럼

사라지는 길 위에서 소년은 이제 목 언저리만 남아서

밤은 점점 길어지고 먹을 것은 점점 줄어들고

 

추위 곁에는 어느새 다가온 모닥불만이

 

사이,

다시 모양을 바꾸는 양떼구름들……

 

 

 

                      ㅡ《현대시20182월호


이제니 / 1972년 부산 출생. 2008경향신문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집아마도 아프리카』『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아름다운 시편들 > 명시.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게體/손택수  (0) 2018.03.29
鹿砦* 생각  (0) 2018.03.21
먹장가슴/이정록  (0) 2018.03.12
황홀/허형만  (0) 2018.03.12
푸른 냉장고/허형만  (0) 2018.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