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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지게體/손택수

시낭송행복플러스 2018. 3. 29. 00:19



지게

 

   손택수

 

 

 

부산진 시장에서 화물전표 글씨는 아버지 전담이었다

초등학교 중퇴를 한 아버지가 시장에서 대접을 받은 건

순전히 필체 하나 때문이었다

전국 시장에 너거 아부지 글씨 안 간 데가 없을끼다 아마

지게 쥐던 손으로 우찌 그리 비단 같은 글씨가 나왔겠노

왕희지 저리 가라, 궁체도 민체도 아이고 그기

진시장 지게체 아이가

숙부님 말로는 학교에 간 동생들을 기다리며

집안 살림 틈틈이 펜글씨 독본을 연습했다고 한다

그 글씨체를 물려주고 싶으셨던지 어린 손을 쥐고

자꾸만 삐뚤어지는 글씨에 가만히 호흡을 실어주던 손

손바닥의 못이 따끔거려서 일찌감치 악필을 선언하고 말았지만

일당벌이 지게를 지시던 당신처럼 나도

펜을 쥐고 일용할 양식을 찾는다

모이를 쪼는 비둘기 부리처럼 펜 끝을 콕콕거린다

비록 물려받지는 못했으나 획을 함께 긋던 숨결이 들릴 것도 같다

이제는 지상에 없는 지게체

 

 

  

                ㅡ계간시와 시학2018년 봄호



손택수 /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부산에서 성장. 1998한국일보신춘문예에 시 당선.시집 호랑이 발자국』『목련 전차』『나무의 수사학』『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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