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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옆구리의 발견(외1편)/이병일 본문
옆구리의 발견 (외 1편)
이병일
나는 옆구리가 함부로 빛나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먼바다가 감쪽 같이 숨겨놓은 수평선과 아가미가 죽어 나뭇잎 무늬로 빛나는 물고기와 칼을 좋아해 심장의 운명을 감상하는 무사와 무딘 상처 속에서 벌레를 키우는 굴참나무는 매끈한 옆구리를 지녔다
살아간다는 것은 옆구리의 비명을 엿듣는 일
그러나 일찍이 아버지는 백열등으로 피는 늑막염 소리 듣지 못했다
갈비뼈를 자르고 한쪽 폐를 후벼 파내는 시원한 통증을 맛봐야 했다
옆구리에 속하는 것들아
옆구리에 속하지 않는 것들아
나는 먼 곳의 옆구리가 비어 있어 풍요롭다고 생각한다
오늘 나는 일몰의 격포바다에서
세상의 옆구리에 박히는 붉은 심장의 박동을 세어보기 위해
하루하루 고독을 씹어 빛나는 수평선의 옆구리를 위해
해와 달의 시간이 포개어지는 저녁이 되었다
옆구리는 환하고 낯선 하나의 세계 혹은 감미로운 상처가 풍미하는 절벽이다
나는 아버지의 옆구리가 길고 낮게 흐느껴 우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 옆구리는 촉촉이 젖었고 그 옆구리는 새까맣게 죽었고 그 옆구리는 비명을 삼킨 흉터가 되었다
이제 나는 옆구리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이쁜 옆구리를 가진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다
― 시집『옆구리의 발견』
활엽수림 도서관
사슴벌레가 참나무에 새겨놓은 낙서들
햇살을 한입 가득 베어 물고
갈맷빛 햇잎으로 쑥쑥 자라나고 있네
햇잎 그늘이 벌레들의 이부자리를 깔아놓자
누가 슬프고 아름다운 동화책을 펼쳐놓았을까
장수하늘소가 초록빛 활자를 깊이깊이 갉아대네
참나무 숲이 푸르디푸른 잠언으로 깊어져갈 때
어린 잎눈 책을 열람하는 모시나비
그윽한 생각으로 곰곰이 춤을 풀기 시작하네
책 속에 펼쳐진 우울과 슬픔을
그리고 희망을 갉아먹은 적이 있네
나는 책벌레들의 유서 깊은 병을 아네
삼각산 자락에 있는 도서관 가는 길
활엽수림 창마다 책 그림자 너울대네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슴벌레들이 자꾸만 늘어지네
책 그림자 깔려 있는 길을 걷다가
내 침울함을 가져간 도서관을 생각하네
굴참나무 책 그늘에서
도서목록을 기록하고 있는 딱따구리를 만나네
그 낭랑한 소리가 나를 세워놓고
읽다가 덮어둔 모시(毛詩)*를 펼쳐놓네
그 독서가 무르익을 대로 익으면
내 안에 키우는 책들이 조금씩 두꺼워지네
활자들의 숲이 천 개의 도서관을 만들어가네
* 시경(詩經)을 달리 이르는 말. 중국 한나라 때의 모형이 전하였다고 한다.
― 시집『옆구리의 발견』
이병일 / 1981년 전북 진안 출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 2007년 문학수첩신인상에 시「가뭄」 외 4편이,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견딜 수 없네」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옆구리의 발견』『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