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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봄꿈 (외 1편)/유계영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봄꿈 (외 1편)/유계영

시낭송행복플러스 2019. 6. 24. 06:13



봄꿈 (1)

 

   유계영

 

 

온종일 털었는데 네 개의 지갑은 모두 비어 있다

 

나는 꿈속에서 허탕만 치는 소매치기였으나

아무도 없는 무대에 올라 개망초처럼 흥겨웠다

 

빈 주머니들은 더 가벼워졌겠지

왼손과 오른손을 꽉 묶고 차분히 잠들겠지

 

겨울에 떠난 것들이 겨울로 돌아오지 않는 것을

뭐라고 불러줄까 생각하면서

 

낡은 것은 새것으로 새것은 낡아가고

모르는 것은 아는 것으로 아는 것을 모르게 되고

 

봄에도 그러겠지

 

장발장은 빵만 훔쳤는데 왜 십구 년을 갇혀요?

은촛대를 훔쳤을 땐 왜 용서받아요?

 

선생님은 왜 아무것도 몰라요?

 

나는 떠들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손잡이가 떨어진 채로 들썩거리는 주전자들아

 

멀리 바람으로 날아갈 수 있는 죽음이 있다고 믿는

삶의 아둔한 속도로는

집오리 같은 시간 속을 영영 뒤뚱거리게 될 것

 

살아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웃는 낯으로 침을 뱉고 돌아서는 사람들

 

눈에서 태어난 것들이 눈으로 죽으러 돌아와

사흘 내 잠만 자다 나가는 것을 두고

슬픔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모르는 것은 끝까지 몰라두거라

어른 같은 아이는 귀엽지가 않으니

 

 

공공 서울

 

 

손톱은 밤에 깎는다

시궁쥐들의 분발을 위해

인간이 못다 저지른 악행을 대신해준다면

우리가 더 많은 치즈를 빚을 것이다

 

다음엔 가혹하게 끝내주시겠지

신도 있다는데

무거운 얼굴을 씰룩거리는 새들의 병은

오늘도 차도가 없다

즐겁고 즐거운 나머지

 

연인들이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지나간다

그러자, 그렇게 하자

 

중국매미는 바로 죽여야 한대

천적이 없기 때문이래 친구가 말한다

 

천적이 없는 신 같은 건 만날 일 없던데?

그러자, 그렇게 하자

 

시작하는 안녕은 몰라도 끝내는 안녕은 잊지 마

팔이 하나뿐인 남자는 잊지 않았다

발이 세 개나 되는 그는 유일한 팔로

세 번째 발목을 들고 근면성실 양말을 팔았다

 

아침에 켜두고 간 형광등이

그대로 켜져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불쑥 떠오른 대낮에 한 약속

기꺼이 서로의 신이 돼주기로 한

언제 어디서나 꺼낼 수 있는 포켓치즈처럼

 

 

             ⸺시집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2019. 4)



유계영 / 1985년 인천 출생.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 2010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온갖 것들의 낮』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