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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어머니 연잎/최영철

시낭송행복플러스 2019. 6. 24. 06:41



어머니 연잎


 최영철



못 가득 퍼져간 연잎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그것이 못 가득 꽃을 피우려는
연잎의 욕심인줄 알았습니다
제 자태를 뽐내기 위해
하늘 가득 내리는 햇살 혼자 받아먹고 있는
연잎의 욕심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연잎은 위로 밖으로 향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래로 안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직 덜 자라 위태위태해 보이는 올챙이 물방게 같은 것들
가만가만 덮어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위로 밖으로 비집고 나오려고 서툰 대가리 내미는 것들
아래로 안으로 꾹꾹 눌러주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동란 때 그러하셨듯
산에서 내려온 아들놈 마루바닥 아래 숨겨두고
그 위에 눌러앉아 방망이질 하시던 앙다물던
모진 입술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그것들의 머리맡에서
꼬박 밤을 밝히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최영철/1956년 경남창녕 출생, 부산에서 성장.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돌돌』 『금정산을 보냈다』 『찔러본다』 『호루라기』 『그림자 호수』 『일광욕하는 가구』 외 다수, 육필 시선집 『엉겅퀴』, 성장소설 『어중씨 이야기』, 산문집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등이 있다. 백석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최계락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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