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들꽃외 4편/김기승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들꽃외 4편/김기승

시낭송행복플러스 2019. 7. 8. 22:05



들꽃 (15)

 

김기승

 

 

 

햇살이 바라볼 때 너는 꽃만 피워냈고

달빛이 바라볼 때 너는 이슬만 머금었다

태풍이 불어닥쳐도 너는 견딜 줄말 알았고

소나기가 내리쳐도 너는 눈물짓지는 않았다

 

하여 너는

사랑과 미움을 알 리가 없는데도

 

네 곁을 지나칠 때면

짙은 향기로 유혹하고

 

다가가서 뚫어지게 바라보면

환하게 웃는다

 

그래서 네가 예쁘다

 

 

 

 

첫눈처럼 (19)


 

첫눈이 잊혀질 즈음이면

어김없이

또 첫눈이 내린다

 

쌓여가는 낙엽에 묻히듯

너를 잊고 살다가도

어느 순간 바람에 쓸려나간

낙엽의 빈자리처럼

어김없이

또 내가 그리워진다

 

사랑이란

기억 사이로 내리는

첫눈처럼

또다시 쌓여가는 그리움이리

      

      

 

목련화에게(29)

 

 

내 눈 속으로

네가 쏙 들어왔다

순간 나는 눈을 꼬옥 감았다

네가 나가지 못하게.

 

그렇게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하나가 되었다

우리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걷자

 

그 길에 바람도 불겠지만

내가 밭이 될 테니, 그대는 꽃으로

우리 서로

눈을 뜰 수조차 없도록 살자

 

         

 

 

사람의 향기(91)

 

 

사람의 향기에 취하고 싶다

한잔 술에 취해 더욱 목말라져 가기보다는

사람의 향기

그 누군가의 향기 속으로

목마른 술잔이 되어 흠뻑 취하고 싶다

 

내 마음 텅 빈 항아리로 허전할 때

사람의 향기가 채워지길

소망하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빈 곳을 채워줄 수 있는

짙은 향기가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그리움이다

너와 나는

그 누군가의 빈자리에서 피어날

아름다운 향기이다

 

 

 

비의 찬가 (147쪽)


 

쏟아지는 빗줄기의 경이로움을 보라

땅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는

빗방울의 절망을 보라

그 누구 하나 간섭하지 않았음에도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음에도

비는 빛의 영광을 따라 하늘로 올라갔고

비록 자신의 무게를 감내하지 못했을망정

빛의 찬란함을 감당하지 못했을망정

세차게 추락하고 산산이 부서진 후에야

낮은 대지를 유유히 흐를 수 있음을 깨달았다면

그 누구도 비의 절망을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사랑이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나니

비가 내릴 때 가슴이 숙연해진다면

그의 절망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한번쯤은

생각해 보면서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

 

 

   시집 『목련화에게(2019년 5월 9일)


-----------------------------------

김기승/ 1958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고 상경하였다. 연세대학교경기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직업학박사이다. 경기대학교와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동양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999 문예사조 당선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2004년 첫 시집 꿈꾸는 시간을 펴내고 이어서별의 그리움⟫⟪봄 햇살⟫⟪들꽃향기가 있으며 다섯 번째 시집 목련화에게를 내어 놓는다. 에세이집The Gift와 진로가이드타고난 재능이 최고의 스펙이다등 다수의 저술서가 있다. 시인은 그리움이라는 재료를 통하여 인간의 철학적 심연을 탐색하고 자연과 사랑의 본질적 관계를 지극히 맑고 순수하게 통찰해 내는 시를 쓴다.

 


'아름다운 시편들 > 명시.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해의 사람/길상호  (0) 2019.07.27
섬/곽재구  (0) 2019.07.19
수선화 위에 내리는 눈 /황학주  (0) 2019.07.05
어머니 연잎/최영철  (0) 2019.06.24
열쇠/장석남  (0) 2019.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