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들(외 1편)
마경덕
근육을 소비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소낙비, 근육이 빠진 어느 정치인의 공약처럼 바닥에 뒹군다
몸집을 키운 사내들이 괴물처럼 변해버린 육체를 전시 중이다 전봇대를 붙잡고 버티는 헬스클럽 광고지, 비에 젖은 종이의 근육도 만만치 않다
선거 벽보를 장식하던 노인의 이름에도 근육이 있었다 소나기처럼 찾아온 권력은 자주 뉴스에도 등장했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하늘이 있었다
화폐의 근육으로 터질 것 같은 금고들, 인맥이 촘촘한 저 노인도 화폐 속에 숨은 질긴 실처럼 자신의 전부를 은폐했다
바다의 근육으로 쫄깃한 모둠회가 나오기 전 쓰키다시로 등장한 흐물흐물한 연두부, 이 빠진 노인 같다 입속에 살던 서슬 푸른 호령은 퇴화하고 혀의 걸음도 어눌한
기억은 누수되고 한도 초과인 노인의 카드에는 근육이 없다
“가만히 있어도 해마다 근육은 감소됩니다” 의사는 그것도 병이라고 했다
하루치 근육을 다 써버린 태양이 서쪽능선으로 내려앉는다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실패한 시를 묶는다
입을 쩍 벌리는 집게클립
초원을 향해 강을 건너던 어설픈 나의 누 떼가
몇 해째 악어의 이빨에 물려있다
건기에 이마가 깨진 문장들, 쓰다 버린 언어의 자투리들
클립은 습작의 뒷다리를 덥석 물고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고
그런데,
악어의 이빨자국이 선명한 그것들이 가슴을 쿵쿵 뛰게 한다
시와 연애한 지 17년, 시와 나의 관계는 무사한가
버둥거리는 물살에, 누 뒷다리 하나 던져두고
세상에 나가
일찍 죽어버린 시를 생각하는 밤
나는 악어의 입을 벌려 확인한다
저편으로 가지 못한 누 떼와
악어가 득실거리는 강가에서
밤새 떨고 있던 그 어린 詩의 마음을
⸻시집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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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덕/ 1954년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신발論』『글러브 중독자』『사물의 입』『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