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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찔레꽃- 송기원

시낭송행복플러스 2014. 5. 27. 14:15

 

찔레꽃

 

송기원

 


처음부터 어려운 길인 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대를 잊는 일이 하도 깊어서
어질머리 흔들리는 봄날 저녁이면
갈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그런 지경에서
꿈결같이 사람 냄새를 맡곤 하였습니다.
한 번 돌고, 두 번 돌고, 또다시 도는
그런 산모퉁이 아래 아늑한 곳에서는
개 짖는 소리. 된장국 냄새. 밥 짓는 연기 속에서
마을의 불빛들 하나 둘 밝게 켜지고
처음부터 어려운 길인 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대를 잊는 일이 하도 깊어서
갈 길도 돌아설 길도 모두 어둠 속에 묻혀버릴 때
그대 대신에 느닷없는 수천수만 찔레꽃 송이들
무언無言, 무언으로 피어올랐습니다.
그렇게 그대 대신에 피어올라서
돌아설 한가닥 외길 비추어주었습니다.




      -(『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송기원/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197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경외성서(經外聖書)',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회복기의 노래'가 함께 당선되어 화려하게 문단에 나왔으며, 이후 예리한 현실인식과 탐미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작품세계를 펼쳐왔다. 1983년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과 2001년 제9회 오영수문학상을 받았고 "경험의 진정성과 표현의 진정성을 아울러 갖"는 작품세계로 "원초적 호소력"를 지닌다는 평을 받으며(유종호, 문학평론가) 1993년 제24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소설집 '월행(月行)'(1979), '다시 월문리에서'(1984), '인도로 간 예수'(1995)와 장편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1994), '여자에 관한 명상'(1996), '청산'(1997), '안으로의 여행'(1999), '또 하나의 나'(2000), 시집 '그대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1983), '마음속 붉은 꽃잎'(1990), '저녁',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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