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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해일 - 서정주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해일 - 서정주

시낭송행복플러스 2014. 5. 27. 14:17

 

해일
서정주


바닷물이 넘쳐서 개울을 타고 올라와서 삼대 울타리 틈으로 새어 옥수수밭 속을 지나서 마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이 우리 외할머니네 집에는 있었습니다. 이런 날 나는 망둥이 새우 새끼를 거시서 찾노라고 이빨 속까지 너무나 기쁜 종달새 새끼 소리가 다 되어 알발로 낄낄거리며 쫓아다녔습니다만, 항시 누에가 실을 뽑듯이 나만 보면 옛날이야기만 무진장 하시던 외할머니는, 이때에는 웬일인지 한마디도 말을 않고 벌써 많이 늙은 얼굴이 엷은 노을빛처럼 불그레해져 바다 쪽만 멍하니 넘어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왜 그러시는지 나는 아직 미처 몰랐습니다만, 그분이 돌아가신 인제는 그 이유를 알긴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고기잡이 다니시던 어부로, 내가 생겨나기 전 어느 해 겨울의 모진 바람에 어느 바다에선지 휘말려 빠져버리곤 영영 돌아오지 못한 채로 있는 것이라 하니, 아마 외할머니는 그 남편의 바닷물이 자기집 마당에 몰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붉어져 있었던 것이겠지요.




서정주 시인/ 1915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에 들어가기 전 3년간 한학을 배웠으며,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한 뒤 석전 박한영의 권고로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으며, 같은 해 김동리, 이용희, 오장환 등과 함께 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하여 동인지 활동을 하였다. 1941년 첫 시집 '화사집' 이후 '귀촉도', '서정주 시선', '신라초', '동천', '질마재 신화', '떠돌이의 시', '서으로 가는 달처럼',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안 잊히는 일들', '노래', '팔할이 바람', '산시', '미당 서정주 시전집'(전2권), '늙은 떠돌이의 시'를 출간하였다. 위의 시집 외에 '국화 옆에서', '미당 서정주 시전집'이 있으며, 그 밖의 책으로는 시론서 '시문학원론', '시창작교실', '시창작법' 등이 있고, 수필 '미당의 세계유랑기', '안 끝나는 노래', '나의 문학 나의 인생', '내 영혼의 물빛 라일락',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안 잊히는 일들', '문학을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소설 '박사 장이소의 산책', 전기 '김좌진장군전', '한국의 현대시', '세계민화집'(전5권),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 '서정주 세계민화집' (전5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