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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풀이 마르다 - 손택수

시낭송행복플러스 2014. 8. 29. 10:54

풀이 마르다 

손택수

 

 

강이 수척하니 풀도 여윈다

 

구월에서 시월로 넘어가는 풀엔

저녁별을 받으며 서쪽으로 멀어져가는 강물 빛 같은 것이 있다

 

몸속에 남은 물방울 몇이 그러쥔 풀의 체취를 걸쭉하게 졸이는 시간

 

그건 얼마쯤은 떠나가는 자의 모습이다

떠나가는 저를 붙들고, 슬그머니 손목을 놓아주는 자의

마른 글썽임

 

어느 지방에선 수의를 먼옷이라고 한다

잴 수 없는 거리를 옷감으로 한 말

 

얼마쯤 저를 이미 저만치 데려다 놓고

떠나온 곳을 이윽히 바라보는 자의 눈빛,

 

풀빛이 흐릿해지니 풀 향이 짙어온다

 

구월에서 시월로 넘어가는 풀에선 까슬까슬

미리 장만한 삼베 수의 스치는 소리도 들린다

 

 

      -《현대시학》2014년 6월호

 

 

손택수 시인/ 1970년 전남 담양 강쟁리에서 태어난 뒤 부산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지독한 향수병과 짝사랑을 앓다가 암울한 문학소년 시절을 보내고,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국제신문 신춘문예에도 시가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호랑이 발자국'과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청소년을 위한 고전산문 '바다를 품은 자산어보' 등이 있다. 신동엽 창작상, 이수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제13회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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