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이호우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 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淨化(정화)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趙雄傳)에 잠들던 그 날 밤도
할버진 율(律)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니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이호우(爾豪愚/. 경북 청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의명학당을 거쳐 밀양보통학교를 마쳤으며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가 신경쇠약으로 귀향했다. 1929년 일본 도쿄예술대학[東京藝術大學]에 입학했으나 신경쇠약과 위장병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했다.
8·15광복 후에는 잠시 대구일보사를 경영했으며, 《대구매일신문》 문화부장 및 논설위원을 지냈다. 1940년 이병기의 추천을 받아 시조 《달밤》을 《문장》에 발표하여 등단했으며, 이어 《개화》, 《휴화산》, 《바위》 등을 발표하였다. 1946년 《죽순(竹筍)》 동인으로 참여하여 시조 창작운동을 전개했고, 1968년 영남시조문학회를 창립하여 동인지 《낙강(洛江)》을 발행했다.
전통적 시조의 양식적 특성을 존중하면서 현대적인 감각과 정서를 담는데 힘썼으며, 후기에는 인간의 욕정을 승화시켜 편안함을 추구하고, 의지(意志)를 주제로 한 독특한 관념 세계를 개척하여 시조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누이동생이 시조시인 영도(永道)이다. 작품집으로 1955년에 펴낸 《이호우시조집》과 누이동생 영도와 함께 1968년에 펴낸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