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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햇살의 말씀/ 공광규

시낭송행복플러스 2016. 3. 13. 16:12




햇살의 말씀


공광규

   

 

세상에 사람과 집이 하도 많아서

하느님께서 모두 들르시기가 어려운지라

특별히 추운 겨울에는 거실 깊숙이 햇살을 넣어주시는데

 

베란다 화초를 반짝반짝 만지시고

난초 잎에 앉아 휘청 몸무게를 재어보시고

기어가는 쌀벌레 옆구리를 간지럼 태워 데굴데굴 구르게 하시고

의자에 걸터앉아 책상도 환하게 만지시고

컴퓨터와 펼친 책을 자상하게 훑어보시고는

연필을 쥐고 백지에 사각사각 무슨 말씀을 써보라고 하시는지라

 

나는 그것이 궁금하여 귀를 세우고 거실 바닥에 누웠는데

햇살도 함께 누워서 볼과 코와 이마를 만져주시는지라

 

! 따뜻한 햇살의 체온 때문에

나는 거실에 누운 까닭을 잊고 한참이나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햇살이 쓰시려고 했던 말씀이 생각나는지라

 

광규야, 따뜻한 사람이 되거라

 


     —시집 (『담장을 허물다 』창비 2013)



공광규 시인/  1960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 충남 홍성과 보령을 거쳐 청양에서 성장했다. 동국대 국문과와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담장을 허물다』, 논문집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 시평집 『시쓰기와 읽기의 방법』, 『여성 시 읽기의 행복』, 시창작론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이 있다. 〈신라문학대상〉 〈동국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대상〉 〈현대불교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3년 ‘작가가 뽑은 가장 좋은 시’에 「담장을 허물다」가 선정되었고, 동시그림책 『구름』이 프랑스에 수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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